마태복음 5:17-20(참조 신명기 10:12-22;디모데전 1:1-11/ 20250126)
들어가는 말
오늘은 주현절 세번째 주일이면서 설명절을 앞둔 주일입니다. 주현절 세번째의 말씀은 율법과 예수님과의 관계에 관한 말씀입니다. 첫인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처음 대면했을 때의 이미지를 말하는데요, 설연휴가 되면 각지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고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힘들고 먼 그 길을 오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보에 실린 박인걸의 시구절처럼 ‘제 둥지를 찾는 짐승들의 본능처럼’ 고향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그곳에 추억이 있고, 행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 가족으로부터 받게 될 사랑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고향을 찾곤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가족의 곁으로 오신분들, 또 오실분들 모두가 함께 하는 그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 율법의 본질을 돌아보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율법의 본질이 무엇이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게 합니다. 말씀을 통해 율법의 본질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율법이란
율법은 히브리어 ‘야라’에서 유래한 말로, 지시, 교훈, 법령, 계명, 법, 관습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또 헬라어로는 ‘노모스’는 ‘분배(할당)하다’, ‘나누다’, ‘분리시키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거룩히 구별하여 살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법입니다. 율법은 신·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의 생활과 행위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 전체를 가리킵니다. 율법의 궁극적인 기능은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단순히 규정된 여러 법조문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한’ 수준에 이르도록 요구하며 또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인 ‘아가페’를 실천하도록 요구합니다. 율법의 완성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 완성하신 율법을 우리 삶 가운데에 나타나도록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사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페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17절) 예수님의 가르침은 과거의 전통적인 율법을 무시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래의 정신을 회복하고 그 뜻을 완성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신명기 10장에는 모세가 마지막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 광야에 모아두고 선포했던 설교가 나옵니다. 신명기 10:12-22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허락해 주신 율법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증거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지키라 명령하시고 가르쳐 주신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허락받은 복을 자자손손 영원토록 누리는 비결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13절) 눈 앞에 약속의 땅을 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복락 안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첫째 가는 계명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거룩한 원리를 지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차 그들에게 다가올 마지막 여정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는 점을 오늘 모세는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은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며, 하나님 신앙으로 굳건히 살아갈 때 이스라엘에게는 그 어떤 민족도, 세력도 위협이 되지 않다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율법이 이미 출애굽 과정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승리 원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바르게 지켜 행하면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가나안 정복의 여정까지 쭉 이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애굽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22절)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박하고 통제하려는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주인공으로 살게 하기 위한 배려라 합니다. 일종의 울타리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지키시려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는 나아가 세상을 향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세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이 지키고 보호하시는 민족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율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징과 같은 것입니다.
일점 일획도 변함없는 말씀
율법의 목적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며("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롬 5:13), 죄를 깨닫게 하여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합니다(갈 3:24-25). 즉, 모든 율법은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그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에베소 지역에는 많은 이단, 사이비들이 등장하고, 유대주의자들로 인해 교회가 많은 혼란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바울은 마게도냐로 떠나게 되었기에 자신이 가장 믿고 신뢰하는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하여, 그를 통해 바른 율법과 교훈을 가르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늘 디모데를 향한 당부를 통해 율법의 참 교훈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곧 율법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목적은 사랑의 실현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랑 없는 율법과 사랑 없는 가르침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의 본질이 이스라엘을 아끼고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이를 가르치고, 증거하는 이들도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랑으로 가르치고, 사랑이 드러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바울은 율법은 본질상 선하다 선언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율법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악용해 자기 합리화와 권력화의 도구로 사용했던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잘못 이해되고 사용되어 왔다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믿고 신뢰하는 디모데를 에베소 지역에 머물게 하여 율법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성도들을 바르게 이끌고자 했던 것입니다. 어렵게 바른 신앙의 길로 들어선 성도들이 자칫 잘못된 지도자들로 인해 다시 옛날의 죄악 된 시절로 돌아갈 것을 염려한 바울의 배려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이유
예수님께서도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본질상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며,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허락하신 도구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곧 율법은 본질상 악한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알고 지켜야 할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만 예수님 당시에 율법이 악한 것처럼 느껴졌던 것은 그 율법을 가르치고 행하는 이들이 율법을 사람들을 핍박하고, 정죄하는 수단으로 악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잘못된 행태를 바로 잡아 율법을 완성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나아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태복음 5:18-19)”는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는 율법의 본질이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 도구로 허락된 것이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이유는 그 율법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사랑을 통해서 본래의 율법의 의미를 완성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나가는 말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증거해야 할 하나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 대신 세상 논리와 가치에 물들어, 세상과 구별되지 않아 지탄받고, 비난받는 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테두리이니 그 안에서 예비하신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세상에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켜 행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겸손히 주의 말씀을 하나씩 하나씩 지켜 나아갈 때 우리를 향한 시선이 바뀌고, 우리를 향한 부정적 인식도 바뀌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나누고 증거하는 그릇입니다. 그 소중한 사랑과 말씀을 담아내는 그릇이 더러워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거부되고, 손가락질 당한다면 그처럼 안타깝고, 큰 잘못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담아낼 그릇으로 부름받은 교회와 성도는 날마다 스스로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얼룩진 세상의 흔적, 죄악의 흔적을 회개하고 율법의 완성이신 주님을 따라 거듭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진리를 세상 모두에게 온전히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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