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51-62(참고 요엘 2:12-17; 디모데후서 2:11-13 /20240218 )
들어가는 말
지난주까지 주현절이 끝나고 이제 새로운 절기인 사순절의 기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부활절 날짜 정하는 것은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결정했는데,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하였고 그후 전세계의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이 결정을 지킨다. 춘분(春分)을 기준으로 하는데요. 춘분 당일 혹은 춘분 직후 보름날=만월(滿月)이 지나고 첫주일이 그해의 부활절인데, 2024년은 3월 31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하며, 이 기간에는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 그리고 부활을 생각하며 근신하고 회개하는 기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순절기 동안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의미를 깨달아 새로운 신앙의 성숙을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51-53절)
예수님의 상황이 전환되는 것을 예고하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이 끝나가고 있음을 아셨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늘로 올라갈 때가 다 되었음을 아신후에 일어난 일에 대한 언급입니다. 죽으심의 임박함을 아시고 하신 행동이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셔서 말씀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승천하실 것입니다. 그 승천의 기약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갈릴리 지역에서 예루살렘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일 정도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갈 때, 사마리아 지역을 거치지 않고 일주일 정도가 소요되는 베레아 지역길이나 요단강변을 따라 걷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뢰아나 요단강변을 따르는 길이 아니라 사마리아를 지나는 길로 가고 있다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기-그곳에 머물 준비- 위해서 사자(심부름꾼)들을 먼저 보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입니다. 북 왕국이 기원전 721년경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했을 때 아시리아 임금은 많은 사마리아인들을 다른 곳으로 추방하고 사마리아에는 시리아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이민족들을 데려와 정착시켰다. 이후 사마리아인들은 이민족들과 피가 섞여 혼합 인종이 되었고 그들의 종교 역시 이민족들이 갖고 들어온 이방 신들 때문에 혼합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사마리아는 아시리아에 멸망한 이후 이방 땅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곳을 지나는 것을 피하고 더 먼 베뢰아 지역으로 다녔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그곳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그 여인을 통해서 소식을 듣고온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며 예수를 세상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믿음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 때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배의 장소에 관한 논쟁을 하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라고 말씀하시며 남 유다의 예루살렘과 북 이스라엘의 그리심산이라는 예배공간, 곧 장소적 구분을 없애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아마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예수가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배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라고 하더니 그도 결국 예루살렘으로 간다며 오해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도 별수없는 유대인이라는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제자들의 모습은 어땠나요?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54절) 이러한 제자들의 반응에 대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길로 가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대 다른사본에 따르면 이러한 예수님의 꾸짖음 뒤에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하시고"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 요엘서에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멸망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돌이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욜2:13) 그런데 제자들은 그들을 불로 멸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의 길,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마리아 인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예수님의 본질적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외로운 길 :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
누군가 내가 가는 길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고, 그것에 동참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길은 외롭지 않은 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이해하는 이 없이 그 길을 홀로 걷는 것은 외로운 싸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이해해 주는 이가 없었기에 몹시도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그것을 사마리아 사람들은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깨닫지 못한 것이죠. 기가 막힌 것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인데, 이렇게 분열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실상 세상에서 순례자처럼 사셨습니다. 유대에서 배척당하셨고(요 15:18), 갈릴리에서 쫓겨나셨으며(요 6:66) 가다라 지방에서는 떠나 달라는 부탁을 받으셨다(마 8:34).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가 그곳에 머무시는 것을 거부했습니다(눅 9:53).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은 생활의 불안정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제자와 연관된 어려움을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마리아를 떠나 다른 마을로 가실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57)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진실로 따르는 자가 없음을 아시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각오없이 일시적인 기분이나 공명심에서 제자가 되려는 사람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이에게 "나를 따르라" 말씀하시며 동행을 요청하시지만 그들은 핑계를 댈 뿐입니다. 그들의 말에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입니다. 장사지내는 것,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을 먼저 하게 해달라 합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십니다. 외로운 예루살렘 가는 길이죠? 바울은 이 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딤후 2:11-12) 요엘은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간 것이라 설명합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요엘 2:13) 곧 사명을 감당하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것이 제자의 길입니다.
나가는 말
제자의 길,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외로운 길입니다. 그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결단이 필요한 길입니다. 알아주는 이가 없기에 외롭고 험난한 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59절) 그렇기에 자기를 부인하는 마음, 주님과 함께 죽을 각오가 우리에게 필요한 길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그 길의 동행자로 교회를, 저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이 사순절의 기간동안 주님의 그 외로운 길에 우리가 함께 동참하여서 동역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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