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4:1-9(참고 요한일서 1:8-2:6; 누가복음 15:11-32 / 20240303 )
들어가는 말
오늘은 용산교회가 설립된지 117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면서 사순절 셋째주일입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교회를 붙들어주시고, 이 교회를 통해 이 지역의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귀한 날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어제는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이 오셔서 교회의 주변을 청소하고 정리해 주셨는데요. 진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117년의 시간에 이런 봉사와 헌신의 손길들이 있었기에 교회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 온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 주신 호세아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속에서 귀한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여전히 우리의 주변은 코로나의 위험과 경제의 어려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시련들이 우리의 삶에 있습니다. 고난의 시절에 더욱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부활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돌아오라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는 8세기 예언자로서 북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여로보암 2세 시대인 기원전 745년경부터 북이스라엘이 멸망을 앞두기까지 20여 년동안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동시대의 예언자는 남유다의 아모스가 있습니다. 이 때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압박 속에 시달리며 내부에서도 왕을 몇 명이나 갈아치우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백성들은 이방신인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은 호세아의 입을 빌려 '돌아오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멀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리문답서를 보면 죄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며 불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불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을 가져옵니다. 요한 역시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한복음 16:10)
우리의 불신앙을 하나님은 우리의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죄란 살인을 하고, 사기를 치는 것들도 죄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음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은 그들의 불의로 인해서 그들이 넘어졌기에 이제 돌아올 것을 촉구하십니다. 그들의 불의, 그들 안의 죄는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먼저는 예배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온전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들을 세워놓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2절)
수송아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던 짐승의 대표적인 것이 수송아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수송아지를 드리면서 범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예배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수송아지를 드리면서 형식에 치우쳤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이 제사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결핍과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로서 제시된 것이 짐승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합당하고 온전한 제사를 드리는 것을 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래의 하나님께 향했던 그들의 제사의 의미는 사라진 체 제물만을 하나님께 드리는 흉내만 내는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굳은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6)
이제 선지자는 이러한 형식적인 예배를 그만 멈추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입술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입술로 드린다는 것은 '언어', '말'로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삶을 돌이켜 죄를 입술로 고백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것을 말합니다. 이제는 짐승으로가 아니라 회개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말합니다.("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사죄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한 각오
호세아는 사랑으로 호소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음란한 자기 아내 고멜의 이야기를 백성들에게 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던 사랑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 돌아갈 때 제대로 각오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호 14:2-3)
먼저 ‘선을 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는 수송아지가 아니라, 우리 ‘입술의 열매’를 제물로 드리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손으로 만든 우상’을 숭배하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말씀을 가지고”라는 말에 묶여 있죠? 즉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각오를 새롭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호 14:4-7)
그때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은 다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거짓 우상을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호 14:8-9)
이 모든 복은 정직한 하나님의 도(道), 즉 그 길을 갈 때 가능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 길에 필요한 회개를 이렇게 반복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
나가는 말
사순절은 바로 그 하나님의 용서를 위해서 약속된 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기 지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이 시기에 다시한 번 우리의 죄악된 모습,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고백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귀한 절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후회하고 회개했으면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산다고 하는 이는 이렇게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합니다. 때로는 잘못을 범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후회하고, 회개하고 다시는 그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여기에 쓴 것을 깨달아라. 총명한 사람은 이것을 마음에 새겨라. 주님의 길은 올바르다.
의로운 백성은 그 길을 따라 살아가지만 죄인은 비틀거리며 넘어질 것이다."(9절/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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