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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설교

옛 사람, 새 사람

꿈지기의사랑 2024. 1. 27. 22:10

에베소서 4:17-24( 20240131)

 

들어가는 말

 

  믿음과 지식에 있어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그 목표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라 바울은 말합니다. 이러한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깊게 신앙의 뿌리를 내림으로 이러한 세상의 풍조에 휘말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성도간에 서로 연합되어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연합된 신앙으로 성장한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온전한 사람이 되기 이전의 옛 사람과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새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옛 사람이란

 

   본문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옛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은 새 사람입니다. 옛 사람과 새 사람, 이 둘은 단지 라는 한 글자 차이에 불과하지만 결코 미미한 차이가 아닙니다. 이 차이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에 잇닿아 있느냐 떨어져 있느냐의 차이, 즉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심원한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옛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옛 사람은 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을까요? 18절을 보세요.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18)

   ‘옛 사람마음이 굳은 사람이라 합니다. 마음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음, 즉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어 완고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한센병은 고통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는 병입니다. 손가락이 잘려도, 코가 문드러져도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절망으로 귀결되는 참으로 무서운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방인의 삶인 허망한 것을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허망하다는 것은 목적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즉 인생의 창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는데도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허망한 삶입니다. 허망한 것으로 행하지 말라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삶의 목적을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마음이 굳어 마비된 사람을 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찾아와도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 은혜가 떠나도 전혀 감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코앞에 있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마비되어 있다 보니, 하나님의 성품과 활동에 대해 무지합니다. 영적으로 무지하니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줄기를 받아 마시는 감각도 없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영원한 죽음에 잇닿아 있는 줄도 모르고 자신이 산 줄로 알고 삽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19)

   바울은 이방인 생활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그것은 너무 굳어져서 감각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죄의 무서움은 모든 것을 굳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처음에 죄를 범했을 때는 마음에 두려움과 후회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반복적인 죄를 범하게 되면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죄의 노예가 되고 욕심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어서 썩어져가는 구습,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삶(방탕하고 죄짓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이사야 44:18)

 

   마음의 굳음으로 인한 영적 무지의 결과를 사도 바울은 감각 없는 자가 된다고 규정했습니다. 만족이라는 감각을 모르니 그는 게걸스럽게 끌어모으는 데에만 일생을 허비합니다. 이웃에 대한 연민의 감각이 없으니 무자비하게 타인을 이용하고 도구화시키고도 되레 좋아합니다. 수치심이라는 감각이 마비되니 온갖 성적 타락에 빠져도 전혀 죄를 알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자신의 욕망을 주인 삼고, 스스로 하나님 없이, 하나님 행세합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24) ‘새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재창조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성품)을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추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에 만족하며, 하나님의 소망을 자신의 소망으로 삼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의와 거룩함의 열매 맺기를 좋아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 마음의 눈이 떠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분리되는 순간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지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새 사람은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직하게 내 자신을 되돌아보면, 혹시 나는 새 사람의 옷, 그리스도로 옷을 걸쳤지만 여전히 옛 사람의 옷을 입고 살던 때처럼 하나님에 대해 무감각하고,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고, 사람들을 경쟁과 이용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구습에 매여 살지는 않았습니까? 죄수복을 벗고 빛나는 의의 옷을 입었지만, 죄수의 버릇, 노예의 습관을 따라 여전히 자기욕망을 주인 삼아 하나님에 대해 무감각한 사람이 되어 살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면 새 사람의 옷은 입은 듯하나 옛 사람처럼 산다면, 그는 새 사람입니까? 옛 사람입니까?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는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새 사람으로서의 신분이 변화되었다고 새 사람에 걸맞는 수준의 삶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합니다. 23절을 읽어보십시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23) 이 말은 나의 의지와 용기와 각오로, 내 마음을 새롭게 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내 의지가 아니라 성령님의 힘으로 날마다 새롭게 되라는 뜻입니다.

   ‘새 사람의 삶의 원천은 은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가 새 사람의 원천입니다. 그 은혜는 재력으로도, 지식으로도, 노력으로도 쟁취해 낼 수 없고, 오직 십자가를 의지하고 바라보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그 은혜는 성령님을 통해 속사람으로부터 솟아납니다.

 

나가는 말

 

   여전히 죄의 습성을 벗지 못하고, 땅엣 것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옛 자아를 매섭게 십자가에 못 박아 회개할 때에야, 성령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우리 마음에 부어지고, 우리는 또다시 새롭게 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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