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5:1-7( 20240214)
들어가는 말
지난주에는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된 공동체가 우리의 모습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체이기에 서로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아야 하고, 분내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지체로서의 공동체를 유지해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물질을 나눌 뿐 아니라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었습니다. 덕을 세우고 서로를 세워주는 덕스러운 말을 함으로 인해서 감정이 상함으로 갈라지는 교회의 모습이 되지 않아야 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인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서로를 향해서 긍휼히 여기며 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랑받는 자녀로서 하나님을 본 받는 삶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
우리의 속담에 보면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경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경험한 사람이 그 일에 대해 더 잘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나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받은) 자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절) 즉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형제간에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살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2절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버려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서 생명을 내어 줄 만큼 참된 사랑을 하라고 말합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그렇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답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무두 하나님을 본받아야 하지만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해 죄 가운데 있게 된 인간은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알 수 없기에 본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 경험하고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가 부모를 보고 그 부모의 모습을 닮아가듯 주님의 사랑을 입어 거룩하게 된 성도는 주님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2절)
기존의 습관을 내려노라
바울은 변화된 성도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로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 중의 하나를 과거의 삶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모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나 행동을 관찰하고 그것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새로운 습관으로 나의 모습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습관 하나를 고치는데는 66일 정도가 걸리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에는 신전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신전에는 몇백 명씩이나 되는 여사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위 거룩한 매춘부로 불렸습니다. 그들의 수입은 신전의 유지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한 삶의 태도는 에베소 교회의 사람들의 삶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자만해서는 안되었습니다. 바울은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3절) 그것들로부터 벗어났다고 여기겠지만 그것들과 가까이하면 결국 그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말하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4절) 주님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었지만 과거의 습관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서 드러나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특별히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신중하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자신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러한 말들을 지속적으로 부르게 될 때 그것에 물들게 될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변화기를 원한다면 과거의 습관을 내려놓고 무의식 속에서도 그 말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의식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헛되고 불순종하는 일에 참여하지 말자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당부합니다. 새 사람의 말은 감사하는 말이 되어야 한다 권면합니다. 감사란 단지 갚음의 정신만이 아니라 복종의 정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의 교훈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헛된말 속이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영지주의 자들입니다. 그들은 육체에 속한 것은 하등하고 중요하지 않다합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죄에 빠지는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그들과 함께 하는 자리, 함께하는 삶의 태도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에베소서 4:14)
나가는 말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온 인격이 예수님을 달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에 행하던 습관, 행하던 말의 습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그러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의 습관이나 태도를 끌어 안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감사의 말, 사랑의 말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본받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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