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3-11
들어가는 말
에베소에서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를 보낼 때 바울은 오순절을 에베소에서 보낸 후 마게도냐를 지날 때 여름과 가을을 거치고, 고린도에 도착해서는 겨울을 느긋하게 보내면서 성도들과 함께 지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즉 에베소에서 바다를 건너고린도에 갔다가 거기서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로 돌아와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계획을 변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유는 에베소에서 형언할 수 없는 환난을 겪게 되어 계획했던 대로 실행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바울은 정성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인도했음에도 한 두 사람의 선동에 의해 온 교회가 바울의 사도직의 권위를 무시하고 의심하여 바울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그러한 불편한 관계가 풀리고 해소되었지만, 바울은 과거를 회상하며 고린도인과 개종한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는 그릇된 인상과 의구심을 풀어주기 위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어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누구나 당하는 환난
우리는 누구라도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4절에서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라고 말합니다. 각 자의 처지와 환경에 따라서 당하는 환난이 다르겠지만 우리는 환난을 당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겪은 환난과 고통, 수모와 억울함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누군가 환난을 당하면 사정을 동정해 주거나 같이 동참해 주거나 위로해주는 것이 일반적이어 할텐데 바울의 주변에는 오히려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고린도에서 겪었던 자신에 대한 오해-사도직의 권위를 무시하고 의심했던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상황 등-로 인해서 겪어야 했던 심적인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바울이 경험했던 아시아에서의 고난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이러한 상황을 경험하고난 바울의 입에서는 찬양이 나왔던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자신을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누구나 환난을 당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환난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신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비(사랑)이었다는 것을 보여 감사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경험했던 환난 속에서 위로의 하나님 이셨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삶에서 예수님이나 바울 뿐만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누구나 환난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환난이 주는 교훈-위로의 하나님
그러나 환난이 꼭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극심한 환난을 경험했을 때 비로소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뢰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모든 환난을 위로하실 수 있으신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환난을 당할 때는 죽을 것 같이 힘들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환난 속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시편기자도 이런 말을 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환난을 당할 때는 힘겹고 어렵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들이 환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것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한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6절) 바울은 고난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고난은 자신만이 겪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의 성도들도 함께 고난을 당하며 참아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위로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횐들이 자신과 함께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고 있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도 받게 될 것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육신적인 노력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만이 절망가운데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고 위로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로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자신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렇나 고난을 견딜 수 있고 그 고난 속에서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고린도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주어질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7절)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환난을 경험하거나, 위로를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환난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환난 당함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 또 우리가 환난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환난을 견딜 소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방주사를 맞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 길을 걸었다는 위로가 그들을 이러한 환난으로부터 지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고난은 더 큰 위로를 동반함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바울은 기도의 요청을 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기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바울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 모습을 통해서 다른 이들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 기도로 협력하고 돕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가는 말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능력과 도우심을 바라는 방법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의 절망과 죽음의 위기에서 우리를 건지실 분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그렇게 해 오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주신 우리의 인생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를 그에게 바라노라"(10절)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계획하심 속에, 주권 속에 있다는 고백을 하는 바울과 같이 우리도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해아하는 아름 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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