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1:1-11
들어가는 말
베드로전서는 세상속의 교회가 적대적인 세상을 지나 하늘의 하나님 보좌에 이르는 교회의 '여정',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긴 '세례의 여정'을 적극적으로 권면합니다. '임시 거주 외국인과 여행객' 같은 교회가 세상을 지나가면서,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공동체'의 사명을 다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베드로전서가 세상 한복판을 교회가 하나님의 제사장 된 공동체로 지나가는 모습 곧 '세상 속의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면, 베드로후서는 그런 세상이 교회 안에 넘쳐 들어와 교회의 영적 생명과 본질을 위협하는 도전을 보여 주는 '교회 속의 세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밝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들어온 세상의 거짓 가르침과 부패한 삶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그 해명을 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 것입니다.
발신자와 수신자 소개
베드로후서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왜 이 편지를 쓰고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는 편지를 보내는 자신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로 표현한다. 뒤를 이어서 시몬 베드로라고 이중적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시몬 베드로라는 이중적 이름을 사용한 것은 이것이 베드로의 것이라는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종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데, 당시 사회에서 주인에게 완전히 예속되어 있는 노예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붙잡힌 자 된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라는 표현도 사용하고 있는데, 주님의 권위를 위임 받은 대리인임을 의미합니다. 직접 눈을 보고 귀로 들은 증인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서 믿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의를 통해서 사도 못지 않은 믿음을 얻은 자들입니다. 베드로후서는 당시의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를 바르게 인식할 때 은혜와 평강으로 우리의 삶이 충만해 질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의 거짓 교사들에 의해 무신론적인 쾌락주의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앎으로써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3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생명과 경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그분을 알 때 받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분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영광과 덕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함께 교제하며 살아게 하셨습니다.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게 부름받은 사람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대답이 5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는 일'이나 '신적 성품에 참예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미 주신 '생명과 경건'이 하나님을 아는 일을 통해 우리 안에 열매 맺는 결과입니다. 썩어질 것을 피하고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일은 '신적 성품에 참예함으로써'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은 경건, 곧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순종하는 일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경외해야 할 구속주 하나님이 바로 심판주요 또한 창조주 곧 세상을 다시 창조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적성품에 참예하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을 통해 완성인 사랑에 이르러야 합니다. 믿음을 통해서 자신이 죄 사함을 받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담대한 소망을 누립니다. 이런 확실한 소망을 받은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부름받은 경건한 삶에 대해 충성되고 신실하게 살게 합니다. 성도의 믿음은 삶에서 열매를 맺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졌다면 그 믿음을 삶에 실천할 능력인 ‘덕’을 갖춰야 합니다. 덕은 ‘지식’을 통해 분별력과 통찰력을 구비합니다. ‘절제’ 없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성도는 절제하되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삶으로,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형제 우애’로 나아가야 합니다. 형제 우애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희생하며 용서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만약 이런 삶의 열매가 없이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다면 ‘부르심과 택하심’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때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복을 누립니다.
*. 세상의 특징은 3가지 정도이다.
1) 정욕에 휘말린 세상의 썩어짐이다. 즉 교회가 처한 세상의 특징은 썩어짐이다. 썩어진다는 것은 죽음의 특징이다.
2) 더러움(죄에 오염된 상태)이다. 더러움은 오염의 결과로 영적이고 도덕적인 의미에서 죄로 인한 거룩의 상실이다.
즉 신적성품에 참여하는 것과 대조되는 세상의 특징은, 죽음과 죄, 곧 썩어짐과 더러움이다.
3) 간접적 특징은 '허무함과 일시성'이다.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들어가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영원한 나라'로 표현한 것에서 세상을 피하고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들어가는 세상은 '영원한' 세상이기에 죄와 죽음이 특징인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 허무한 세상이라는 특징이 전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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