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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꿈지기의사랑 2020. 12. 30. 00:51

베드로전서 5:12~14

 

들어가는 말

 

   지난 주에 장로와 성도의 관계에 대한 권면을 함께 나누었었는데요. 자원하는 마음으로, 욕심을 버리고 본이되는 모습을 통해서 양 무리를 치고, 양들은 그들에게 순종해 주고 겸손하게 그들을 세워주는 모습을 통해서 교회가 세워지기를 바라는 베드로의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베드로전서라는 이름에 걸맞게 편지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기에 편지의 형식에 맞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 본문속에 담긴 의미를 새겨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는 귀한 시간을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실루아노

 

   본문에는 실루아노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가 바울서신의 실라와 동일 인물로 봅니다. 실라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를 파송하실 때, 그 일원이었다고 하나, 불확실합니다.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에는 실라를 택하여 선교의 동역자로 삼았습니다(15:40). 그때부터 실라는 바울의 선교 동역자로 오랫동안 바울의 오른팔로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빌립보에 있었으며 거기서 붙잡혀 바울과 같이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의 조력자, 혹은 대필자로 등장합니다. 그를 신실한 형제라 부릅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진실한 사람, 믿음만한 사람이었다는 것과 그가 베드로를 대신해서 본 서신을 기록하는 일을 담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역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박해와 고난이 있던 그 시기에 함께하는 동역자가 있다는 것은 힘과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도 그러한 조력자로서 실루아노(실라)가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은혜는 무엇을 가리키나?

 

   베드로는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여기서 모든 은혜는 고난을 받아 흔들리며 제 위치를 벗어나곤 하는 교회를 다시 회복하시는은혜입니다. 또한 제 위치로 회복하실 뿐 아니라 굳게 서게 하시는은혜이며, 능력으로 강하게 하셔서결국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서도록 터를 견고하게 하시는은혜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반석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의 십자가와 그의 십자가의 길만이 교회로 하여금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견고한 반석임을 말합니다.

12절에서 말하는 참된 은혜는 바로 세상 속에서 고난받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길을 따라갈 수 있게 하는 은혜가 참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의 산 소망을 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 선한 양심의 길을 가는 교회에게 베푸시는 모든 은혜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가리켜서 5:1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마르튀스)라 소개했습니다. 증인으로서 그가 증거하는 내용은 그리스도의 고난 곧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가 그토록 이해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 부활과 승천의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선한 양심의 길입니다.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며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아, 하나님의 뜻을 함께 앎으로써그리스도와 함께 같은 뜻으로 그 하늘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이 은혜위에 굳게 서서 고난의 길을 견딜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문안(13)-동역자들과 함께 나누는 문안

 

   문안이란 안부를 묻는 것입니다.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여자)’가 문안한다고 밝힙니다. 여기서 바벨론이란 당시의 로마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로마에 있는 교회가 문안한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현실 속에 있는 흩어진 나그네와 같은 교회를 향해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교회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영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만 고난의 길, 선한 양심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써서 보내는 베드로로 대변되는 로마의 교회 역시도 그들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고 있음을 상기시킴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또 한 명의 동역자를 소개하는데, 바로 마가입니다. 베드로는 그를 내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초대 전승에 의하면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떠난 후에 베드로의 동역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아들이라 불렀던 것처럼, 마가를 영적인 아들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영적 아들인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로서(4:10) 본명은 마가 요한이다(12:12, 25). 그는 바울의 제 1차 전도 여행 때 동행했으나 제 2차 전도 여행때는 동행하지 않았습니다(13:5;15:37-39). 그러나 후에 바울이 투옥되자 시중을 들었습니다(4:10; 1:24). 이런 마가와 함께 어려운 현실 속에 있는 흩어진 나그네 교회를 향해 안부를 전하고 있습니다.

 

축복(14)-사랑의 입맞춤과 평화

 

   사랑의 입맞춤이라는 것은 당시의 교회에 집회가 있을 때 사용된 의식이었습니다. 기도한 후에 남자들끼리 입 맞추고 여자들끼리 입맞춤으로 사랑과 우정을 표시했습니다. 또 새로운 성도가 한사람 교회에 나오게 되면 교회 감독인 장로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그 성도와 입 맞추었던 것입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제자가 랍비에게 인사드릴 때 입을 맞춥니다. 성경에서 입맞춤은 일종의 친밀함에 대한 외적 표현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며, 서로 위로하며, 서로에게 힘과 격려가 되어주고, 서로 겸손히 섬기는 모습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평화를 빕니다. 고난의 현실 속에 그들에게는 평화가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 고난의 현실을 견디고 나면 하나님의 참된 평화가 그들의 삶에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며 그들은 인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코로나의 현실 속에, 경제적 어려움 속에 고단한 인생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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