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5:1-11
베드로는 이제 마지막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불시험과 같은 고난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해서 그들중에 교회의 지도자 된 자들을 향해서 권면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소개 하는데 3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장로(Πρεσβυτέρους/프레스뷔테루스/연장자)'요, 둘째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μάρτυς/마르튀스/목격자, 순교자)이요, 셋째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자(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라고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함께 고난에 참여하는 자(κοινωνός/코이노보스/파트너)로서 당시의 로마의 고난과 현실, 그리고 그 고난의 현실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선을 행하며 살아가야할 교회공동체로서 바로 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른 지도자 상(1-5)
어떤 공동체가 바르게 성장하고 지속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 공동체를 바르게 이끌어주는 지도자(Leader)가 필요합니다. 그 지도자로서 등장하는 사람들이 장로들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의 첫 시작에서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사도이면서 동시에 자신도 교회의 지도자들처럼 장로임을 선언합니다. 베드로는 사도와 거의 동격으로 장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하는 장로는 'Πρεσβυτέρους/프레스뷔테루스'이다. 본래적 의미는 '연장자'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치리하는 힘을 가진 직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이 본문은 직책상 장로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주어진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한 고난에도 모범이 되는 증인들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도 참여할 사람들이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걸어가야할 삶의 자세란 어떤 것일까?
장로가 해야할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떼를 치는 것(먹이는 것)이다. 공동체의 목자로서의 역할이다. 본래 양떼의 목자는 그리스도시다. 그러나 장로들 역시 공동체를 모으고 지도하며 돌보고 보호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러한 역할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진해서 기쁜 마음을 가지고 수행해야 한다.(2절 上) 더러운 이익을 탐해서가 아니라 열렬하고 헌신적인 마음으로 그리고 이 일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신해서 그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장로들에게는 누군가를 치리하는 장계의 전권이 주어져 있었다. 이들은 정신적인 후견인이나 공동체의 통치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 직분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직권을 남용하거나 주인처럼 행세하는 대신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권위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모범적인 행위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가라는 것이다. '꼰대'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을 비하여 부르는 말이다. 기성세대 중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꼰대'라 부른다. 교회 안에도 다른 세대가 모여 공동체를 이룬다. 그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기의 뜻을 일반화해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범을 통해서 그들과 함께 선을 행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사랑과 겸손으로 나에게 맡겨주신 양을 (성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봐야 한다.
젊은 세대(νεώτεροι/네오테로이)를 향한 당부
젊은 세대, 장로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젊은 세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순종하는 태도이다. 순종이란 부당한 것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질서를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의 신앙의 연륜과 삶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들에게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앞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과 평행을 이룬다. 장로들이 그들의 모범된 삶을 통해서 젊은 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모범된 삶을 보이는 그들의 의견과 뜻을 따라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겸손의 근거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강한 손'에 대한 신뢰이다. 하나님의 손은 강력한 도움이다. 하나님의 활동력과 전권을 상징한다. 지금당장 자신의 뜻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지도자들에게 불신과 불만을 늘어놓는 것은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해서 신뢰할 때 우리는 근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오히려 근심이나 박해의 상황 속에서도 염려로부터 자유로워질수 있는 것이다.
또한 깨어있어야 한다. 정신을 차리라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공동체를 공경하고 그리스돌의 박해의 사건의 배후에서 조종하는 악마적인 세력의 위협속에서도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난과 박해를 통해 신앙을 시험하고 훈련시키시고 심판하며 은혜를 내리고자 하신다. 반면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이 배교하도록 충동한다. 그런후에 배교한 자들을 우는 사자처럼 '먹이'로서 삼켜버린다.
동역자가 있다.
앞에서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그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다. 고난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일은 정신을 차리고 믿음 안에서 굳건히 서는 것이다.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고난의 현실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고난의 증인으로, 다가올 영광에 함께 참여할 믿음의 동역자들이 우리 외에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고난 속에서 견디어 가고 있는 믿음의 동지들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 믿음의 본이 되고, 순종하며 연합하는 모습을 통해서 이 고난을 견디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고난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고난은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끝이 보이는 고난이기에 우리는 견딜수 있으며 소망이 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10절)라는 약속을 준다.
이 고난이 끝나고 나면 오실 주님을 통해서 우리는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기에 오늘도 지도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모범을 보이며 양을 돌보고 양들은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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