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6:11-19
들어가는 말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죄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약에서는 속죄제가 드려졌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대속의 희생 제사를 예표합니다. 인간은 죄를 가진 존재이기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의 삶 자체가 심판이며, 절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러한 자리에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속죄일입니다. 피와 속죄제물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처럼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불완전한 인간을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인 속죄일에 대해 조금더 심도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자기를 위하여 속죄하라 :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불완전한 인간)
속죄일에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은 먼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속죄를 드립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제사 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살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대제사장은 자신의 죄를 살피고, 그 후에 가족의 죄와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갑니다. 이처럼 속죄, 회개의 기도를 드릴 때 다른 이의 허물을 바라보기 보다 먼저 자신 안에 있는 죄악들을 살피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의 허물을 바라보기 보다 타인의 허물을 보고 정죄하거나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 객관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론은 제물로 수송아지를 드렸는데, 이것은 레위기 4장에서 속죄제를 드릴 때 수송아지를 드려야 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물을 드린 후에 다음 절차가 이어집니다. 대제사장은 향로를 가져다가 휘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득채워 시야를 가렸습니다. 향로를 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 속죄소를 연기로 가린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냄’과 동시에 ‘가리는’ 가시적이고 상징적인 기능입니다. 둘째로 향연으로 속죄소를 가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게 되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향로에서 피어 오른 연기가 지성소를 가득 채워 속죄소를 가리게 되면 다음 단계가 진행됩니다.
제단을 정화하는 이유
대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를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립니다. 피를 뿌림으로 대제사장과 그가 속해 있던 집안의 죄로 인해 오염된 지성소를 정화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집안에 대한 죄에 대해 고백을 드리고 난 후 다음 공동체를 위한 속죄가 이어집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수송아지를 드렸다면 백성을 위해서는 염소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앞서 했던 방식과 같이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가져가 이를 속죄소 위와 앞에 일곱번씩 뿌립니다. 동물들의 피를 뿌림으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할 뿐 아니라 성물을 다시 정결케 합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를 보면 신앙 공동체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모습임을 볼 수 있습니다. 속죄일의 순서는 어떠합니까? 대제사장으로부터 그의 가족 그리고 공동체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속죄라는 행위가 개인에서 더 큰 공동체로의 이동이 있는 것입니다. 핵심은 개인, 공동체 모두의 죄를 속죄하고, 정결하게 하는 예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만연해지는 모습과는 반대의 모습입니다. 나의 잘못이 아닐지라도 공동체의 잘못이라면 그것을 함께 속죄하는 것입니다. 이어 지성소를 위한 정결 예식이 계속됩니다.
사랑의 속죄
대제사장이 동물들의 피를 뿌리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백성들의 죄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된 것을 피로써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죄를 짓고 부정한 백성들이 성막을 드나들다 보니 가장 거룩해야 하는 지성소도 오염이 되었기에 이러한 정결 예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으로 보아 이스라엘 백성들과 성소는 별개로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건물을 의미하지 않고, 그들이 드나들던 모든 곳도 개인의 죄로 인해 부정해 지는 것입니다.
또한 이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회막 안에 그 누구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제사장들도 성소에 드나들면서 사역했지만, 이날만큼은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정결하게 된 대제사장만 장막을 드나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제사장들은 장막 뜰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장막 안에서의 예식이 다 끝나면 대제사장은 뜰에 있는 제단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제물로 드렸던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을 정결하게 합니다. 피를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그 위에 일곱 번 뿌려서 부정하게 된 제단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제단에 피를 뿌리라고 기록된 부분은 이곳 뿐입니다. 또한 제단에 피를 뿌리는 것은 오직 속죄일에만 진행되었습니다. 속죄제를 살펴보면 사람의 죄가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그리고 성전을 더럽히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대제사장은 피를 뿌림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죄를 속죄하고 정결하는 것입니다. 피뿌림에 대해서 조금 더 묵상해보길 원합니다. 출애굽기에서도 피 뿌림이 나타나는데, 시내산에서 모세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며 피를 백성에게 뿌린 뒤 이와 같이 증거합니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애굽기 24:8)
나가는 말
이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성전이고, 성전인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죄를 짓게 된다면 개인의 죄를 넘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죄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성전 된 공동체를 더럽히는 결과를 낳습니다. 만일 이것을 인식한다면 죄인은 회개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함께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성전이며 우리가 모여 교회가 되고, 각자의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굴욕을 당하시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는 주님 앞에 진정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 응답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으로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이라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며 사십시오. 우리의 구주 되시는 주님 안에서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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