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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열다

꿈지기의사랑 2024. 9. 28. 09:56

레위기 16:1-10(20240922)

 

들어가는 말 

 

   정결하려면 부정에서 떠나야 합니다.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적극적인 믿음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부정은 그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성막을 더럽힙니다. 그래도 방치하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떠나시고 멸망당하게 됩니다. 죄가 무서운 이유는 개인의 더러움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출병이 그쳐도 8일째에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진정한 거룩(정결)입니다. 그래서 15장까지 우리는 정결에 관한 규정을 함께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정결해야 하며 정결할 때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속죄란? 속죄일이 필요한 이유 

 

   정결의 규례에 대해서 우리가 11장부터 15장까지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5장이나 되는 긴 여정을 통해서 정결에 대한 규례를 살폈는데요. 여기서 드는 의문입니다. 왜 이처럼 하나님은 정결함에 대해서 강조하시는가?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더러운 죄를 가지고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속죄’는 레위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로 다루고 있습니다. ‘속죄’라는 말은 ‘덮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하여 그 대가를 치르고 속량(贖良)받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죄일이 필요했던 것은 이스라엘의 제의에서 백성의 모든 죄를 완전하게 속죄하기 위해서는 평일의 속죄제와 속죄일의 속죄제가 모두 필요했습니다. 평일에는 죄가 드러나거나 깨닫게 될 경우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반면에 속죄일에는 일년 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누적된 죄들을 한꺼번에 용서함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속죄일은, 미해결된 백성의 모든 죄와 성전의 지성소까지 누적된 죄를 철저히 닦아내는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속죄일에는 평일에 용서받지 못한 백성의 모든 죄와 그로 인해 누적된 성소의 오염을 깨끗이 청소함으로써 온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성전은 매년 한 번 이루어지는 대대적 청소를 통해 원래의 거룩한 상태로 유지하고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속죄일의 철저한 청결을 거쳐 다시 거룩해진 성소는 여호와의 지속적인 임재를 유지했습니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에게 있어 속죄일은 이스라엘백성들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날이었던 것입니다. 속죄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속량해 주시는 날 입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절차 

 

   레위기 10장에 보면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불에 타서 죽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잘못하면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라도 담대하게 성소에 나아가서 제사의식을 거행하기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성소에는 정한 날만 들어가고, 절차를 거쳐 들어감으로써 죽음을 면하라는 것’입니다. 즉 마음대로 들어가고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이 성소에 들어가려면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고 숫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쓰고 세마포 옷은 거룩하기에 죄로 더러워진 몸을 씻고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죄와 가족들을 위하여 수송아지로는 속죄제를, 수양으로는 번제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위임식 때 입었던 화려한 예복은 벗고, 몸을 씻고,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겸손의 표현이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다는 자각의 표현이었습니다. 하얀 세마포는 겸손과 정결을 상징하는 옷입니다. 죄인 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없습니다. 지성소의 법궤 위 속죄소(시은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대제사장인 아론이라도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없었고, 1년에 한 번 자신과 백성의 속죄를 위해 들어갔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속죄제물(수송아지)과 번제물(숫양)을 드리고, 몸을 씻은 후 거룩한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절차는 하나님 명령대로 행해야 했습니다. 만약 임의로 행하면 나답과 아비후처럼 죽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10:1~2). 구약의 제사로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는 제약과 한계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그러한 제약이나 한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휘장 가운데로 새로운 살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20). 

 

제비 뽑힌 두 염소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죄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합니다. 아론도 죄인이기에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해 속죄하지 않고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회중도 그들 죄를 속죄하기 위해 속죄제물(숫염소 두 마리)과 번제물(숫양)을 드려야 했습니다. 회중이 드린 두 염소는 회막 문 앞에서 제비 뽑아 하나는 여호와를 위해, 하나는 아사셀을 위해 사용합니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것은 죄가 이스라엘에서 떠났음을 의식적으로 보여 줍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매년 수송아지와 염소로 속죄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흠 없는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고,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7월 10일이면 자신들의 허물과 잘못을 회개하면서 나머지 남은 364일의 기간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 것을 다짐했습니다. 피를 뿌리는 것과 염소를 광야로 내보내는 일은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위를 암시합니다. 그래서 롬 3:24-26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나가는 말 

 

   오늘은 속죄일과 속죄에 관한 규정을 묵상했습니다. 인간은 죄를 가진 존재이기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의 삶 자체가 심판이며, 절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러한 자리에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속죄일입니다. 피와 속죄제물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처럼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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