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3:18-39
들어가는 말
지난 시간 우리는 우리의 몸에 생긴 피부병을 통해서 왜 그것을 부정하다고 하셨는지를 묵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살이 썩어지는 상태에 방치하게 된다면 우리는 살아있으나 죽은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부정하다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판단하는 일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된다면 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범죄를 행하게 될 것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던 제사장들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평가하고 정죄하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피부질환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세 종류의 피부병:건선, 황선, 백선
본문은 총 3개의 피부병에 대해 말합니다. 첫 번째는 종기로 인한 2차 감염된 나병, 두 번째는 화상으로 인한 2차 감염된 나병, 세 번째는 옴로 시작한 나병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18-23절)은 종기라고 표기되어 있는 피부 질병의 2차 감염된 부정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의 시작이 ‘종기가 생겼다’라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19절부터는 2차 감염 증상을 말하데, 흰 점 흰 털 또는 희고 불그스름한 색 점이 생기게 되면 그를 ‘부정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흰 털이 없고 살이 움푹 패이지 않았으면 먼저 7일 동안 격리하고 지켜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몸에 번지지 않게 되면 제사장은 ‘정결하다’ 라고 판단합니다. 첫 번째 질병은 현대 의사들이 ‘건선’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두 번째 부분은 24-28절까지 화상으로 시작해서 그것이 2차 감염이 되고 악성 피부병으로 전환하여 부정한 사례를 말합니다. 본문의 세 번째 부분은 29-39절까지 옴으로 기록된 악성 피부병을 말합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이 옴으로 기록된 증상을 ‘황선’으로 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다른 특징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19절에 보시면 ‘환부가 머리카락 두피 또는 수염에 있다’ 라고 말을 합니다. 두 번째는 30절에 ‘피부가 누르스름해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증상이 있는 환자는 제사장이 7일을 격리시키고 그 이후에 온몸에 퍼지지 않으면 환부에 난 털을 밀고 다시 7일 동안 격리하고 점검합니다. 그 피부병이 온 몸으로 번지지 않고 움푹 파이지 않았으면 제사장은 ‘정결하다’ 라고 판단을 합니다. 그리고 그 환자는 옷을 반드시 빨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병이 번지게 되면 그는 다시 제사장을 찾아와 진단을 받아야 된다 라고 35-36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37절에 보시게 되면 이 옴 이라고 불리는 병이 다 나았는데 피부 색깔이 흰색으로 변하게 되거나 어루러기 같이 굳게 되면 그 또한 ‘정결하다’ 라고 판단을 받게 됩니다. 피부 색깔이 흰색으로 변하는 것은 현대의학에서는 ‘백선’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찾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삶 속에서부터 철저하게 정결해야 함을 말합니다. 규례적으로는 증상이 발견되면 바로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격리를 통해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세 번의 제사장의 점검을 통하여 그의 부정한 또는 정함을 판단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다시 병이 생기게 되면 또다시 제사장을 찾아가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이런 찾아감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내 위기의 큰 그림을 보게 되면 결국은 하나님과의 동행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이 있기 전에는 하나님은 모세를 신의 산 위로 부르셨습니다. 신의 산 위에서 가시적으로 모세와 함께 대화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산위에 가시적으로 계셨던 하나님의 임재가 성막으로 온 곳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성막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온전한 성막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그럼 어디 계신가요. 교회 건물에 계신가요. 선교지의 계신가요.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예수님의 대신 죽어 주심으로 우리의 부정함이 정결케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마음에는 예수님 뿐만아니라 다른 것들도 있다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로마서 8장에 보시게 되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라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의 계시는 예수님과 동행할지 아니면 다른 생각들과 동행할지는 여러분들의 의지(판단/결정)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 마음속에 있는 걱정을 선택하시면 그 걱정은 여러분들의 삶에 무기를 계속해서 더 무겁게 할 것입니다. 내가 어디를 가나 내가 가정의 있던, 직장에 있던, 예배당에 있던, 결국 난 그 걱정과 동행하는 자로써 그 걱정인 무게는 전염성이 있는 피부병처럼 내 삶 전체로 번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욕심을 계속 품게 된다면
내 마음속에 잠깐 들어온 욕심을 내가 계속해서 품게 되면 그 욕심은 장성하여 지고 결국 나를 망치고 내 주변 사람들의 망치게 되고 결국에는 죽음으로 우리를 인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의 계신 예수님과 내가 동행할 때 그 동행함으로 교회를 나올 때 그 동행함으로 내 가족을 대한 그 동행함으로 세상 속에서 일을 할 때, 예수님의 독특함이 예수님의 매력이 예수님의 생명력이 ‘거룩’ 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변화시킵니다. 내 주변을 변화시키고 내가 가는 곳곳마다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오늘은 세 종류의 피부병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부정한 생각을 묵상하던 예수님을 묵상하던 그것은 여러분들의 선택입니다. 이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머리로 안다 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24시간을, 일주 일을, 한 달을, 1년을 예수님을 묵상하는 연습으로 살면 삶이 변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예수님의 거룩의 능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의 동행함을 연습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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