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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지기의사랑 2024. 6. 30. 07:08

레위기 13:1~17

 

들어가는 말

 

   11장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행하심을 먹을 거리로 읽어냈다면 12장은 출산으로 읽어냈다 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어떤 것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존하고 유지하며 지켜 가야 하는 일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은 바로 우리의 일상의 것들을 지켜가면서 드러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13-14장에서는 사람에게 생긴 심한피부병을 다룹니다. 오늘은 13장에 나오는 내용중 심한 피부병에 관한 내용을 살피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피부병을 왜 부정하다고 진단하나?

 

   본문은 피부병(나병/짜라아트)에 관한 증상들이 있는데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밝은 색점이 생기는 증상입니다.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면 제사장에게 보입니다. 여기 나오는 짜라아트는 나병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밀그롬이라는 학자는 여기서 다루는 짜라아트는 오늘날의 한센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집이나 옷에 생긴 짜라아트를 제외하고, 사람에게 생긴 증상과 진단을 토대로 건선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피부에 발생하는 병이라는 점, 나아가 피부에 딱지가 벗겨진다는 점에 피부병이라 번역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피부병을 부정하다고 하는 것일까요? 밀그롬이라는 학자는 병이 죽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나병(피부병)에 걸리면 살이 벗겨지고 사라지는 것을 썩다’, ‘먹혀 버리다등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살이 죽어 가기에 나병에 걸린 사람은 죽은 것처럼 여겨집니다. 즉 그가 죽은 자, 곧 시체와 동일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영역에 닿는 것이 부정하듯이 나병이 부정하다고 선언합니다.

 

피부에 생긴 악성 피부병

 

하나님은 거룩한 공동체를 위해 피부병의 진단 규례를 세밀하게 제정해 주십니다. 나병으로 번역한 히브리어(짜라아트)는 한센병만을 의미하지 않고 악성 피부병혹은 곰팡이로 인한 악성 피부 질환을 총칭합니다. 하나님은 피부에 뾰루지나 색점이 생긴 경우에 부정한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기준을 알려 주십니다. 제사장은 환부 털이 희고 우묵한 것이 명백하면 부정하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확진이 어려운 경우에는 1차로 7, 2차로 또 7일 동안 환자를 격리해 진찰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7일일까요? 김의원은 숫자 ‘7’이 하나님의 능력과 행하심을 드러내는 수라는 점에서 일주일이라는 기간은 어느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 가는 제의적 통과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봅니다. 환부가 엷어지고 퍼지지 않았으면 단순한 피부병이기에 정하다고 선언합니다. 악성 피부병은 전염되기 쉬워 공동체에 해를 끼치기에 정확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격을 손상하지 않도록 진단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부정함을 관찰하기 위한 제사장의 노력이 돋보입니다. 7일마다 한 번씩 상처 부위를 직접 살펴보고 진단을 내리는 신중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심히 조심해야 하는 일입니다. 또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하는 행동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만성 악성 피부병

 

   의학적 지식이 없던 때에 하나님은 지혜로운 진단법을 알려 주십니다. 오래된 악성 피부병의 진단 기준은 생살’(raw flesh)입니다. 흰 점이 돋고 털이 하얗게 되고 생살이 생겼으면 이는 만성이 된 악성 피부병입니다. 이때 제사장은 부정하다고 선언하지만 그 사람을 격리하지는 않습니다(11). 전염성이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악성 피부병이 전신에 퍼진 경우는 정하다고 선언합니다. 병의 진행과 효력이 멈춘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살이 보이면 부정하다고 하고, 생살이 변해 환부가 하얗게 되면 정하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부정하다는 선언은 환자의 행동을 제약하지만, 이를 통해 그는 치료와 쉼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나가는 말

 

오늘은 피부에 생긴 피부병에 대한 말씀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우리의 몸에 생긴 피부병을 통해서 왜 그것을 부정하다고 하셨는지를 묵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살이 썩어지는 상태에 방치하게 된다면 우리는 살아있으나 죽은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부정하다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판단하는 일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된다면 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범죄를 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던 제사장들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평가하고 정죄하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이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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