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1-11(참고 출 17:1-7, 히 4:14-5:10/ 20240107 )
들어가는 말
1월 7일은 주현일로 주현절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주현절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주현절기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겪으신 일과 하신 일들을 잘 나열해 보여줍니다.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크고 작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유혹과 전혀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믿음 생활을 아무리 잘 한다고 하더라도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주기도에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내용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도 유혹을 받으셨다고 복음서 기자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시는 장면에 대한 묘사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3가지의 유혹
이 이야기는 3장의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세례를 받고 나올 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쉬운성경 마태복음 3:17)
그 세례후에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십니다.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께서 받으신 3가지 유혹과 그 의미를 생각해보려합니다. 첫째는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배고품(먹을 거리, 경제적인 해결)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더니 뛰어내리라 합니다. 시편을 91편 11,12절을 인용하면서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라고 기록된 것을 증명해 보라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성전 꼭대기는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헤롯 성전 안에 위치한 왕의 행각 꼭대기라합니다. 성전 외벽 꼭대기에서 골짜기의 바닥까지의 거리는 약 210미터나 되는 바닦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곳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초월적인 능력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러더니 자신에게 경배하고 절하면 이 모든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세상의 권력과 명예를 손에 얻을 수 있는 인생길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천하 만국과 영광의 자리를 준다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유혹을 이겨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예화) 이재명 피습사건
자신의 대통령이라는 영광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불사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권력과 명예욕의 무서움을 또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0.26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1979년에 유신체제를 거부하며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이를 막기위해 정부는 게엄령을 선포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재판에 회부된다. 18년의 군부독재를 이끌던 박정희 전대통령이 당시의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에 의해서 암살된 사건이다. 권력을 가지려는 자들의 암투속에 벌어진 참극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권력과 명예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란 엄청난 것인 것이다. 마귀는 이것을 통해 유혹한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요구한 세 가지 항목을 하나로 묶으면 ‘당신이 메시아(하나님의 아들)라는 증거를 보여라.’입니다. 그 세 가지를 성취할 수 있다면 메시아로 추앙받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자신이 메시아라는 증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 없이 메시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돌에게 명령을 내려서 떡이 되게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요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그리고 세상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다면 사람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마귀의 이런 요구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과도 연관됩니다. 로마제국을 향한 유대인들의 무력독립운동인 유대전쟁은 기원후 70년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힘만으로 로마 제국과 맞선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건 로마 제국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메시아의 도래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실제적인 힘으로 보이라고 요구했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세 가지 유혹은 결국은 자기염려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성취하려는 염려이자 연민이며 열망입니다.
예수님의 답변 : 하나님만 신뢰하라
예수님이 마귀에게 준 세 가지 대답을 기억하시지요? 첫째,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약속)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르비딤의 사건(출 17:1-7)을 연상케합니다. 신광에서 출발해 르비딤에 장막을 친 이스라엘은 마실 것(먹을 것)을 통해 유혹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물로 인해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백성들이 물로 인해서 모세를 원망합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라며 항변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를 시험하느냐'(2절)고 합니다. 출애굽기 기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7절)라 말합니다. 르비딤의 원망은 단순히 먹을 것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바로의 강제노역과 자유를 빼앗긴 삶으로부터 구원)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약속의 땅을 향해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신뢰하지 못함으로부터 파생된 원망(유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에 대한 신뢰마저도 상실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셋째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입니다. 각각 신명기에 근거한 말씀입니다. 이걸 하나로 묶으면 ‘하나님만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떡이 필요하고,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고, 세상의 영광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런 걸 완전히 떠나서 사는 게 아닙니다. 마귀의 요구는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입니다. 예수님도 그것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단들이지 생명 자체는 아닙니다. 그것에 매달리면, 또는 그것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면 생명을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훼손시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하나님만 신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 받으셨고, 또 그 고난 받음으로 말미암아 순종함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온전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조아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함을 받으셨느니라”(히 5:8-10) 따라서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순종함으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신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유혹을 극복하는 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생명의 빛으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를 유혹하는 문제를 넘어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길을 가로 막았던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라고 외치며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가로막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육신의 편안함과 초능력적인 기적만을 바라보는 것과 권력과 명예를 향한 우리의 삶의 걸음이 아닌 '하나님께 경배하는 길, 하나님을 섬기는 길'인 고난의 길을 선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신 예수님의 길이야 말로 우리가 걸어야 할 길 하나님의 섬기는 길임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주일낮예배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쁨을 회복하시는 분 (0) | 2024.03.06 |
---|---|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0) | 2024.03.06 |
안식일에 (0) | 2024.02.11 |
비천한 이들에게 오시는 분 (0) | 2023.12.19 |
위로가 필요한 세상에 오시는 분 (0) | 2023.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