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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한 이들에게 오시는 분

꿈지기의사랑 2023. 12. 19. 22:19

누가복음 1:39-56(참고 사무엘상 2:1-10, 히브리서 11:1-3, 8-16/20231217)

 

들어가는 말

 

   올 겨울은 유난히 비와 눈이 많고, 추위가 길어질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날씨뿐 아니라 주변에 전쟁의 소식이 여전히 있습니다. 하버마스와 가자지구에서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은 멈출 기미가 없고 오히려 민간인까지 오인사살로 죽는 슬픈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냉랭해져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대림절 셋째주일입니다. 힘든 한해를 잘 견뎌 온 우리에게 아기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 차 넘쳐, 이 사랑을 우리보다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으로, 참된 대림의 의미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시절에 이러한 우리의 삶에 오시는 소망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함께 묵상하며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비천함

 

   비천한 두 여인이 등장합니다. 비천하다는 말은 타페이노시스(ταπείνωσις)입니다. ‘굴욕, 낮은 신분, 억압, 비천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낮음을 뜻하기도 하고, 정신적(심적)으로 낮아진 자존감 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유대전통사회에서 여자가 결혼하여 자손을 낳지 못한다는 것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낳아야하는데 낳지 못한 여인들에게는 깊은 한이 맺혀 있었다. 엘리사벳은 결혼하여 아기를 낳지 못하며 입방아에 오르며 고통당하던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절망의 상황속에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고 여겨질 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임신을 합니다. 그때 엘리사벳은 내 부끄러움(불명예/disgrace)을 없이 하려고”(25)하신 것이라 말합니다. 그녀의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뭍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주어진 것이라 고백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기보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위해 그것을 감추게 됩니다.

   또 다른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어린나이에 처녀로서 임신한 마리아도 당시의 통념으로 용납받을 수 없는 상황-처녀가 임신을 한 것은 당시의 통념에 따르면 사실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아이를 임신한 기쁜 일에도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 놀라고 두려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임신을 비밀로해야만 했습니다. 갈릴리 출신의 가난한 가정의 처녀라는 타이틀이었기에 늘 위축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상황을 성경은 비천함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어진 것 같습니다. 이 말속에서 그들이 얼마나 험난한 인생을 살았는지 힘겹고 고단한 그들의 삶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임신한 비밀을 가진 연약함 속에 있는 여인들입니다. 그러한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두 여인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2장에도 아이문제로 눈물바람하며 비천함 속에서 허덕이는 한나가 나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11장에서 비천한 여인 사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눈물과 탄식으로 지내는 인생들, 비천함 속에서 허덕이는 이들이 우리의 주변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을 믿음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임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45절의 말씀처럼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가진 여인들이었습니다. 본문을 보시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마리아가 서둘러서 엘리사벳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과 비슷한 처지의 엘리사벳을 찾아가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 맞는지 확인 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무엘상 1장에서도 한나를 향해 하나님께서 엘리 선지자를 통해 한나를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삼상 1:16-17) 사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 11:11에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gal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절망가운데 있던, 비천함 속에 있던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약속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임신한 요한은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인물이고, 마리아가 임신한 예수는 백성들을 구원할 인물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11:1) 그 믿음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들이고 그 사명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각 자의 처지 속에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며, 서로를 격려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만남을 기뻐합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말한 것을 확인하고 싶었고, 또한 친척인 엘리사벳의 임신에 대해서 축하해 주기 위해서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환대를 경험합니다. 마리아의 방문을 기뻐하는 엘리사벳입니다.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44) 하나님은 걱정과 두려움 속에 있는 마리아의 근심스러운 마음을 아시고 성령을 통해 엘리사벳의 마음을 감동케 하시고 엘리사의 입술을 빌려서 마리아를 위로하고 그의 임신을 축하하고 기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기쁨의 사건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유대 민족은 오랜 세월동안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타민족의 지배라는, 억압적 상황으로 인한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억압과 핍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현실적 희망이 점점 희미해질 때, 어쩌면 더 이상 현실에서는 자유와 해방의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강력해졌을 때 하나님은 마리아를 통해 그 역사를 이루시로 하셨음을 선포하시고, 이 두 여인은 그 역사가 자신들을 통해서 이루어져 가고 있음에 기뻐하는 것이다. 세상의 비난과 조롱에 익숙한 이 두 사람-당시 유대사회의 일반적인 상황이라해도 다르지 않겠다-은 성령 안에서 믿음의 세상을 바라보며 함께 위로와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복있는 여자라는 말에 기뻐합니다. 두려움의 순간 그 두려움을 함께해주고 기뻐해주는 서로를 바로보며 이들은 용기와 소망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그러한 비천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본 것이다.

 

비천한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엘리사벳의 위로를 듣고 마리아는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마리아의 노랫속에 나오는 하나님은 비천한 자를 돌보십니다. 두려워하는 자에게 용기 주고, 비천한 자를 높이십니다. 한나는 기도하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사무엘상 2:6-8) 누가도 주린 자에게 좋은 것을 주어 배부르게 하시고, 로마의 압제속에 있는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기억하시는 분이라고 노래합니다.(53) 히브리서는 이들이 믿음의 본향을 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4-16)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되시는 곳을 꿈꿉니다. 그곳은 비천한 자가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서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고 자신의 행복을 누리는 곳입니다.

 

나가는 말

 

   인권이 유린되고 상실된 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의 계절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마리아의 찬가의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노랫말처럼 엘리사벳과 같이 마리아와 같이 소외되고 유린된 우리의 이웃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이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루실 세상 그 세상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이루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비천한 이들을 회복하러 오시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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