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지기의생각나누기

꿈지기의 생각을 함께 나누어 보아요

목회와 일상의 대화

오후찬양예배설교

내가 친히 가리라

꿈지기의사랑 2023. 1. 8. 12:37

출애굽기 33:12-17(20230108)

들어가는 말

지난 주 우리는 회막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모세와 그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빠른 대처를 통해 그들은 그들 안의 죄된 원인을 내어놓고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회막을 세우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모세와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찾는 삶을 살려했습니다. 그 일은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이 하나님을 앙모하는 사람들을 통해 시작되었고, 그일에 마음을 함께한 백성들을 통해서 역사하였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고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찾는 삶을 회복해 갈 때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지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름으로도 알고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지.못한다고 하시는 것보다 큰 형벌이 있을까요? 알았다는 것은 깊은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몸과 마음과 체험으로 안다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았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인식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참여하심이요.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신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관여하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면, 우리의 인생에 관여하시지 않겠다는 선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을 선언하는 것이 되며,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 된다면 살아있으나 죽은 인생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보다 더 큰 형벌은 없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열처녀의 비유에서도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처녀들이 주님께 문을 열어달라고 애워할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마 25:12) 주님이 우리와 관계없다 선언하는 것이 얼마나 큰 형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내 앞에서 은총을 입었다'말씀하십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좋게 보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게 보셨기 때문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의 눈에 띄고 마음에 들어서 우리와 교제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신 것을 알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도 이것을 근거 삼아서 13절에서 자신과 함께 올라갈 자를 알게 해달라 요청하는 것입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아름답게 맺어지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더욱 돈독한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우상 숭배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삶이 회복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회복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시고, 모세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계약관계, 즉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고 하셨던 계약의 포기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애굽으로부터의 탈출부터 광야의 인도하심의 모든 과정속에서 자신의 백성으로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셨던 모든 것의 포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삶의 회복을 통해서 계약이 다시 성립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14절입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내가 친히라는 말의 원뜻은 '나의 얼굴'(파나이)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친히 가신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 대화하면서 내얼굴을 봐서 라는 표현을 하는데요. 그것은 단순히 얼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을 말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얼굴이 간다는 것은 즉 하나님께서 가신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간절히 듣고 싶었던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고 백성을 진멸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길에서 친히 동행해 주시겠다는 응답인 것입니다. 모세의 중보기도가 성공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동행이 없다면 모든 일을 모세가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면 모세는 편안하게 백성을 인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게서 광야에서 가는 길을 사흘길을  앞서 가며 인도하신다면("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민수기 10:29-33) 모세는 백성과 함께 편안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갈 때 우리의 인생에도 참된 쉼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모세가 이스라엘을 가리켜 '주의 백성'이라고 되풀이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동행하지 않으신다면 이스라엘은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즉 임마누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동행하시느냐 하시지 않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주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느냐 가지지 못하느냐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한 것은 주께서 함께 동행해야 이스라엘이 주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중보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주제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이름을 알고, 이름을 부르고 ,이름을 반포하는 행위는 모세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아는 긴밀함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일 때 비로소 인생의 의미가 있고, 존재의 의미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가는 말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이름을 아심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친밀한 관계가 성립될 때 임마누엘 신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존재의 의미와 가치의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후찬양예배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번째 돌판  (0) 2023.02.05
모세의 삼차 중보기도  (0) 2023.01.15
회막에서의 해후  (0) 2022.12.17
하나님의 동반 거부  (0) 2022.12.11
모세의 이차 중보기도  (0) 2022.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