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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설교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

꿈지기의사랑 2022. 3. 12. 22:59

고린도전서 14:20-25

 

들어가는 말

 

   바울은 지난 주 말씀속에서 우리가 깨닫지 못한 것(방언)으로 일만마디를 하는 것보다 깨달아 알은 것을 가르치고 그러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과 공동체를 위해서 더욱 유익을 주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해주었습니다. 오늘도 주어진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바울은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지혜는1-4장, 그리고 8장에서 언급한 바 있었던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그가 지혜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라고 일컫는 것인 샘입니다. 다른 성령의 은사들과 더불어서 하나님이 말씀이 우리의 공동체와 신앙을 성장시키는 데 사용되어져야 함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지난주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방언과 대조를 이룸으로 인해서 말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즉 성령의 특수한 은사만을 추종하던 당시의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호되게 질책하고 있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10-11) 고린도교회의 은사주의자들은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체험한 은사(방언)만을 가장 값진 것으로 여기며 강하게 주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은사 체험들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은사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은사는 교회 공동체가 영적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고 체험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20절)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신앙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데 사용되지 않는 방언의 남용은 신앙의 미숙을 드러내는 표징이라 여겼기에 그는 그러한 모습을 철모르는 어린아이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언이 그래서 좋은 은사이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것만을 탐닉하는 행위는 옳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영적 어린아이의 모습

 

   바울은 방언은 불신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방언에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함께 있습니다. 고린도 12장에 보면 방언은 성령의 은사 중 하나입니다. 방언은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언은 내적으로 개인의 덕을 세우고 외적으로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행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을 나타내는 표적이 됩니다. 또한 방언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줌으로써,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힘을 줍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중에 어떤 이들은 이것만을 탐닉하고 남용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을 보입니다. 21절은 이야야 28:11-12절을 인용한 것인데요. 하나님이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그의 백성들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어인 방언을 말하면서도 그 내용을 제대로 듣거나 포착하지 못함을 이야기 해줍니다.

   또다른 사례도 이야기하는데요. 방언이 남용되었을 때는 특별히 믿지 않는 자들이 봤을 때는 미쳤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23절) 실제로 고린도 교회에서도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남용으로 성령의 역사를 방해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은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기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 사용될 경우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힘을 주기보다는 방언을 한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자랑이 되고,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저하시켜서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것이 바로 이러한 일입니다. 우리는 방언의 건전한 면을 잘 살려서 교회의 선교를 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끼며 더욱 힘있게 일해 나가는 데 방언이 쓰여지도록 애써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전히 영적인 어린아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은사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어린 아이는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합니다. 마찬 가지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자신의 기분에 내키는 대로 교회의 평화와 질서가 깨지거나 말거나 행동합니다. 그러나 조금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자신이 하는 행동이나 말을 통해서 교회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아닐까를 생각하고 행동하거나 말하게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한곳이라는 것은 결국 착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일치와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는 일을 말합니다.

 

   예화) 소에 비해 송아지가 작지만, 그렇다고 송아지 덩치가 작은 것은 아니다. 닭보다도 크고 개보다도 크다. 그러나 송아지가 아무리 크다 해도, 소보다 클 수는 없다. 덩치가 아무리 커도 새끼는 새끼일 뿐이다. 소 못본 사람에겐 송아지도 크겠지만, 송아지가 소 새끼임을 아는 사람에겐 뻔한 얘기다. 때로 우리가 목청껏 외쳐대는 이야기가 송아지에 머물 때는 없는가? 깊은 세계(소)를 모르기에(못 봤기에) 얕은 것(송아지)을 크다 말하는 것은 아닌지?

 

나가는 말

 

   바울은 예언이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통상 언어로 사람들을 권면하고 안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예언은 교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책망과 판단을 받게 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죄를 드러나게 하며, 마침내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합니다. 그렇기에 개인과 불신자들에게만 유익을 주는 방언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예언이 교회 안에서는 더 긴요합니다. 오늘도 자기의 마음에 맞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하나님의 공동체를 어려움에 빠뜨리지 않는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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