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33下-40
들어가는 말
성경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곳들도 있지만 오해하기 쉬운 말씀들도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바로 그러한 구절들 중에 하나이며 많은 논란을 교회에서 일으켰던 본문이기도 합니다. 여신도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소리냐며 다툼이 일어날 소지를 가지고 있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지나시간 말미에 들려주었던 말씀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 말에서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33절 上)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질서와 평화를 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중 14장에서 말하고 싶어하고 이루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무질서의 극복과 신앙공동체를 바르게 세우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질서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사용하는 바울의 말을 듣고 은혜를 누릴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은사자들에 대한 권고
바울은 은사는 우리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진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것을 강조합니다. 즉 은사들이 자신에게만 주어졌다고 여기거나 자신이 가진 은사가 자신의 노력이나 열심으로 주어진 것으로 착가하여서 다른 사람들을 업수이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악한 영의 역사는 함께 올 때가 있습니다. 마귀가 성령의 역사를 무효화 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분별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성령의 역사와 악한 영의 역사를 구분하는 특징은 절제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능력과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갑니다. 공동체의 질서를 잘 지키고 말에나 행동에 절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그를 보면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 그러나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자기감정과 고집대로 행합니다. 능력은 나타나는데, 공동체를 깨뜨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시기와 질투와 다툼을 일으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은사와 기적이 일어남을 통해 용기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무질서가 나타났습니다. 평화가 깨졌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지만 능력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여신도가 싫어할 말씀이 나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34절) 맥락없이 이 부분만 읽으면 오해의 소지가 많은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3절 하반절부터 읽어본다면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33절) 그렇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여성도들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여자를 지칭했을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은사를 체험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여신도였고, 더 많이 더 강하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에게 절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배함에 있어서 방언과 예언하는 이들이 질서없이 하다보니 이로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바울이 한 것이 잠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제하지 못하고 교회의 덕과 질서와 화평을 깨뜨린 사람들을 향해서 했던 말인 것입니다. 성령의 체험을 하고 교만해져서 다른 이들의 영적인 상태를 판단하고 무시하는 모습에 대한 책망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3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나만 내게만 은사가 임한 것처럼 행동함으로 질서를 깨뜨리고 평화를 깨뜨리려는 사람들을 향한 책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
바울은 또한 자신이 방언과 예언 그밖의 은사들에 대한 권고를 했는데 이에 대해서 자신의 말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로 받으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은사를 활용하라고 권고합니다. 성령의 선물인 은사를 가진자라면 교회를 분열과 분쟁으로 몰아가지 않고 연합과 사랑의 정신으로 행할 것이기에 자신의 사랑의 권고를 듣지 않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바울은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예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는 은사로 교회에서 권면하고 안위하고 계시에 있어서, 지식에 있어서 장래 일을 말하는 일에 있어서 가르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은 이러한 기능을 통해서 교회의 덕을 세웁니다. 그렇기에 예언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방언을 금하지는 말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방언은 공동체의 덕을 세울수는 없으나 개인의 신앙이 성숙과 하나님과의 교통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사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은사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40절의 말씀입니다. 즉 적당하게 사용하고 질서를 따라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의 신앙에도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도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
나오는 말
은사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사를 통해 개인의 신앙뿐 아니라 공동체가 힘 있게 성장해가고 하나님의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은사를 받았다고 자기의 주장과 자기자랑, 자기 고집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일 수록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신과 같은 은사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그들을 업신여기서는 안됩니다. 모든 은사, 모든 축복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서 주셨음을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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