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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을 세우는 은사를 사모하라

꿈지기의사랑 2022. 2. 26. 22:10

고린도전서 14:1-12

 

들어가는 말

 

   지난 주에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랑의 찬가를 통해서 바울이 전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을 통한 구원에 대한 믿음, 현재의 고통,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내하게 하는 소망과 성도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시키는 사랑이라면 고린도교회의 현실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만민의 구원을 향한 미래의 신앙공동체로 성숙해 나갈 수 있다고 전했던 바울의 말을 묵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의 삶가운데서 비록 세상사람들이 바보 처럼 여길 자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을 소유하시고 실천하셔서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어보자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도 14장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은혜를 함께 나누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은사를 선용하라

 

   교회에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은사일 것입니다. 물론 은사란 우리가 가지고 싶다고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말그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기에 모든 은사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고린도의 성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1절) 은사 즉 성령의 선물은 교회가 세워져 가는데 필요한 것이기에 그 은사를 구하기를 힘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에서도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서 봉사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은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바울은 예언과 방언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생긴 은사의 문제에 대해 사랑으로 은사를 선용하라고 말합니다. 사랑으로 선용하지 않을 경우 각자의 욕심을 채우고 자랑을 하는데 사용되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자명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리를 통해서 섬기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방언과 예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방언은 개인의 덕을 세우지만 예언은 사랑의 원리를 따라서 교회의 덕을 세우기에 더욱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따라 은사를 구하라는 것은 그 은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은사를 주신 목적이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2)

 

공동체를 향하는 바울의 마음

 

   바울의 관심은 전반적으로 신앙공동체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방언이 유용하게 작용하기를 기대합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예언이 방언보다 우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거나 어떤 것을 특별히 중시해서 그것을 추종하거나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이 교회의 덕을 세우기만 한다면 예언과 방언은 전혀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방언과 예언 사이에 존재하는 잠재거 긴강에 대한 해석의 신중함이 요구되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특별히 방언과 예언에 관련되어 이야기했지만, 사실 모든 은사는 다 교회를 위하여 쓰임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재능이건, 환경이건, 재물이건, 인맥이건 또는 직분이건 모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은사의 존재의의입니다. 

  바울은 예언하라고 권면합니다. 예언의 목적은 죄 있는 자에게 권면하여 회개케 하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안위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성도들의 신앙 생활을 바르게 이끌어 줍니다. 방언은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지만, 예언은 사람들이 알아듣게 말해 유익을 준다고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예언의 의미를 미래에 관해 알려주는 것으로 오인하면 안됩니다. 예언의 의미는 하나님 말슴을 받아 전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사람들을 돕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은사이자 하나님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는 은사입니다. 즉 설교가 예언의 대표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징계와 경고가 포함된 권면의 말씀을 주신다해도 사랑하는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평안과 소망입니다.("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성도는 은사를 구하되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은사를 더욱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은사를 사용하는 원리는 교회의 덕과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자짓 잘못 사용하면 분란을 야기하며 상처를 입을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23:32)

 

나가는 말

 

   서두에서도 말한 것처럼 바울은 은사의 활용을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밝힙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사를 주신 목적을 따라서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사용하다가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가 평가받는 것은 우리의 은사가 얼마나 큰 것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은사를 얼마나 사랑을 통하여 행하여서 교회의 덕을 세웠느냐가 될 것입니다. 상대가 느낄 수 없는 사랑은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상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깨달음을 주지 못합니다. 바울은 영적 은사가 풍성했던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라며 방언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예언을 더 강조하는 것은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교회의 덕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악기도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 소리를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 통역되지 않은 방언은 알 수 없는 외국 말과 같아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교회에도 유익이 될 수 없습니다. 성도로서 은사를 사용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교회의 덕이 되는지 늘 살필 수 있기 바랍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구하는 은사를 하나님은 기꺼이 주실 것입니다. 사랑속에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여러분의 은사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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