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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꿈지기의사랑 2021. 2. 10. 16:01

베드로후서 3:1-7

 

들어가는 말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것이 있다. 위키백과사전은 이 법을 "징벌적 손해배상(懲罰的 損害賠償, 영어: punitive damages, exemplary damages)은 민사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악의를 가지고" 또는 "무분별하게" 재산 또는 신체상의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불법행위를 행한 경우에, 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시, 가해자에게 손해 원금과 이자만이 아니라 형벌적인 요소로서의 금액을 추가적으로 포함시켜서 배상받을 수 있게 한 제도이다." 라 정의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하려는 법령이다. 특히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언론을 저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난무하는 가짜뉴스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이들을 향한 경고인 것이다. 찬반으로 갈려져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언론의 악영향을 막아보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은 바로 그러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이야기 하는 듯이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이 시간 말씀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살펴온 거짓교사들의 행위와 특징, 그리고 운명에 이어 그들에게 주는 베드로의 경고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의미를 돼새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이유와 목적(1-2절)

 

   우리가 어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그냥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쓰곤 한다. 베드로는베드로는 두 번째 편지를 쓰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나는 여러분의 기억을 되살려서, 여러분의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려고 합니다."(벧후 3:1 새번역) 이다. 개역개정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결국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은 편지를 읽음으로 인해서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을 통해서 잊고 있었던 기억을 다시 되살리려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기억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2절은 그들이 무엇을 기억해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과 사도들을 통하여 하신 '주의 명령'을 기억나게 하려는 의도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억할 때 순수했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수하다에 해당하는 '엘리케리네'는 '혼합되지 않은', '오염되지 않은'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탐심으로 지은 말'(2:3)에 혼합이 되고, '더러운 정욕 가운데'(2:9) 오염되어진 그들의 마음이 회복되어야 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서두의 내용이 언론이 본래의 언론의 역할을 잊은채 악의를 갖고, 무분별하게 기사를 쓰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로부터 본래의 순수함을 되찾는 언론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과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주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거짓 교사들의 조롱(3-4절)

 

   베드로는 편지에서 성도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말한다. 말세에는 자기의 욕망대로 살면서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거짓교사들이 이렇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자신들의 정욕을 따라 탐욕을 이루기 위해 성도들을 미혹하기 위해서이다. 4절을 보면 거짓 교사들이 의심했을 뿐 아니라 조롱까지 한 것은 정확히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그 약속'이었다. 그들이 일부러 잊고자 한 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세상과 종말에 대한 거짓 가르침이다. 거짓 교사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종말에 주가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는 의심이고, 둘째, 세상 만물이 창조 이후로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대로 있으므로 종말에 주가 강림해서 심판하는 일도 없다는 것이며, 그 근거는 하나님의 말슴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생각, 그들 자신의 '세상의 썩어질 더러운 정욕'에 따른 것이다.(3절)

   거짓 교사들은 주의 오심뿐 아니라, 최후의 심판을 거부했다. 대신에 그들은 거짓으로 '자유를 준다고 약속'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약속으로 대치시킨 것이며, 주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부인한 채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방종을 조장한 것이다. 채영삼교수는 <공동서신의 신학>에서 "그들의 주장은 세상이 '창세 이후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모든 것이 그대로 있다'는 논조의 헬라의 세속 문화에 유행하던 사조였을 것이다."라 말한다. 거짓 교사들은 세상과 종말 즉, 우주와 역사에 관해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나 사도 전통의 가르침을 버리고, 당시의 통상적인 세속 철학과 문화에서 받아들인 경험적인 견해를 빌려 말씀과 주의 명령을 의심하고 조롱한 것이다.

 

거짓교사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5-7절)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의심과 조롱에 대해서 베드로는 반박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러 잊기를 원한다고 폭로한다. 그들이 부인하고 대적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원을 이루시는 '약속'이리도 하며 세상을 창조하고 보전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의 수단인 '말씀'이다. 베드로는 바로 이 말씀은 동시에 심판의 원리가 된다고 말함으로써, 저들이 부인한 하나님의 말씀이 장차 임하게 될 종말의 근거가 됨을 밝힌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뿐 아니라, 만물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이다. 자신들을 '사신 주를 부인한' 거짓 교사들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 뿐 아니라, 그 말씀으로 붙들고 계시는 최고 통치권자를 부인한 셈이다. 

   만물이 그대로 있다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에 대해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일부러 부인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들이 변함없이 여전하다고 주장하는 그때의 세상(땅)은 여전한 것이 아니라  물에 의해서 멸망 당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재의 세상은 "그 동알한 말씀으로 간직되어 왔으나, 경건치 않은 자들의 멸망과 심판의 날을 위해 간수되고 있을 뿐"이라 말한다. 과거에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은 현재도 말씀으로 '보화처럼 보존' 되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경건치 않은 자들의 멸망과 심판의 날에 '불사르기' 위하여 마치 죄수들이 감옥에 갇혀 있듯이 '간수'되고 있을 뿐이다.

 

나가는 말

 

   이성없는 짐승처럼,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창조도, 하나님이 우리의 사신 주이심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보존하시고, 심판하실 분으로 오실 것을 우리가 외면한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외면되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거짓된 말과 삶이 행위는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부인하려 해도, 진실에 대해 눈감으려 해도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이며, 심판받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베드로가 우리에게 당부하는 것처럼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서 주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을 기억하며 종말을 준비하며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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