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1-12
위로가 필요한 시대
혹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이렇게 부릅니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라고 말입니다. 88만 원 세대, 연애. 결혼을 포기한 초식남*, 비좁은 고시원에서 살수 밖에 없는 주거 소외자, 50대면 직장에서 쫓겨나기 일쑤인 우리 아버지, 빈곤 노년층 증가그래서 소망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최근들어서는 코로나로 우울한 마음. 하늘 모르고 뛰는 부동산 가격으로. 정치적으로 피곤하기 짝이 없는 색깔론으로. 니편 내편 편가르는 좌우의 진영들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지도자들로. 그리고 아이들을 그냥 밖으로 내어 놓을 수도 없는 폭행과 인터넷의 횡포들로. 눈을 뜨면 거짓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러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베드로전서 역시 공동서신에 해당하는 서신으로서 당시의 박해와 고난에 직면해 있던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6-7) 베드로전서를 ‘격려의 서신’, ‘소망의 서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말씀을 통해 주시는 위로가 함께 하기를 소원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편지를 썼나?
베드로전서는 로마에서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있구요, 편지를 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이 서신은 택하심을 입은 자들(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이 지역의 로마 행정 구역에 드는 소아시아 일대 즉 북방지역을 가리킵니다.-에 흩어진 나그네(디아스포라)) 즉 이들은 디아스포라 즉 흩어진 이들이라는 것에서 작은 힌트를 얻어봅니다. 이 지역들은 헬라화가 비교적 많이 진행되었고 또 로마의 행정력이 잘 유지되었던 지역들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주변 사회와 종교적 문화적, 도덕적인 부분에서 많은 부딪침이 있었다.
그들은 ‘거주 외국인과 여행자’들입니다. 즉 ‘임시 거주 외국인’입니다. 낮선사람들인 것입니다. 즉 ‘혐오의 대상들’이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이들과 결혼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법도 로마 사람들과 이런 외국인들과 차별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로마제국 당시에 ‘임시 거주 외국인’은 일정한 세금은 내지만 매우 제한적인 정치적, 법적 권리만을 갖고 있었고 ‘여행자’는 그마저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고, 공공의 이익이나 지역 신들에 대한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후에 그들이 세상에서 소외된 상태, 그들의 존재가 사회 속에서 갖는 정치적, 사회적 차원의 소외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다신론적인 세속적 문화에 바탕을 둔 로마 제국의 공식종교, 그들의 문화와 사회의 모든 영영에서 로마제국을 거부할 수 밖에 없었고,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태도는 점차 종교적 신앙에 근거한 로마 국가 질서 근간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스도인들은 점차 종교적, 사회적으로 이질적이고 배타적인 존재들로 비쳐졌던 것이다.종교와 정치 그리고 사회와 문화가 한 체제로 형성되어 있던 로마 제국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속한 지역의 일상적 삶 속에서 사회적, 문화적 일탈과 갈등을 빚게 되는 상황속에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함을 받았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순종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교회의 정체성과 소속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늘 보좌에 이르기까지 순례하는 교회이며, 그것이 교회의 방향입니다. 교회가 교회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 곧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고난과 목적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고난은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견디고 이겼을 때 귀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우리의 믿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고난의 시간,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금은 연단하는 것보다 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금이라고 하면 모두 같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금이라도 순도에 따라 순금이라고 불릴 수 있는 금과 그렇지 않은 금이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순금이라도 100% 완전한 금은 없습니다. 금 제련소에서 최고로 인정하는 순금의 순도는 99.99999%입니다. 일반적으로 순금이라고 하면 99.9%를 말하는데 이는 0.1%의 불순물이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99.99999%의 순금이 되려면 아주 많은 제련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순금을 만들려면 금에 섞여있는 불순물을 빼내야 합니다. 그것은 뜨겁게 달군 다음 두들기면 됩니다. 이러한 뜨거운 불을 거쳐서 비로소 순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고난이란 우리의 믿음의 확실함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우리 안에 있던 세상의 더러운 것들,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적인 삶으로 찌들어 있던 우리의 삶을 떼어내고 하나님의 향한 굳건한 믿음에 서기 위해서 우리는 고난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의 시간은 힘겨운 시간입니다. 그 시간속에서 우리는 근심(슬픔-힘들고 괴로움)하게 된다(6절)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려는 우리의 삶은 그동안 익숙한 세상적인 삶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기에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을 견디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7절),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을 얻습니다.(8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그리고 그 믿음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영혼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근거는 어디에서 오나?
우리는 이러한 소망을 어디에서부터 얻게 되며 위로받게 되는 것일까요? 3-6절에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고난을 견딜수 있는 이유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우리에게 찾아온 고난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한시적인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고난은 사라지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견딜 수 있고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소망은 현재와 미래 두 가지로 말씀하시는데, 하나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3절) 그리고 미래에는 영원한 기업과 구원의 완성을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믿음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이러한 은혜가 주어질 것이기에 우리는 소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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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남 :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남자’를 뜻하는 신조어. (나무위키) **본도 : 비두니아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지역으로 흑해 남쪽 지역. 110년경 기독교가 넓게 퍼져 있었다. ***갈라디아 : 주전 25년에 아우구스투스 치하에서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고, 주후 72년에 베스파시안 치하에서 갑바도기아와 병함하며 소아시아의 동쪽 지역을 관할하는 지역으로 정비되었다. (헬라문명이 덜 미친곳) ****갑바도기아 : 트라얀 황제 때 분리 통치되면서 갈라디아와 함게 소아시아 지역에서 헬라화가 가장 덜 진행된 지역에 속했다. *****아시아 : 로마의 지방중에서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았고 헬라 문명이 가장 번창한 곳. 초대교회의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무대였다. ******비두니아 : 소아시아의 북서쪽 흑해 남쪽 해안 선에 인접한 지역으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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