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18-25
두려움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라
사환이라 표현된 사람들은 당시의 집안에서 일하던 노예들입니다. 원문에는 '오이케타이'(οἰκέται)가 사용이 되었습니다. 당시사회의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 있어서 노예들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주된 동력이었습니다. 로마 경제는 '노예경제'였습니다. 1세기 말, 로마 도시안에서만 전체 120만 명 인구에 노예만 4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노예들은 대부분 육체적 노동력이 필요한 곳에서 사용되었는데, 농사일이나, 배에서 노를 젓는 일, 광산에서, 그리고 건축 현장에서 주로 일했습니다. 집안에서 일하는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소아시아에서, 대부분의 노예들은 집안의 일을 돕는 일에 종사했습니다. 집안에서 일하는 노예들은 보통 가정당 1-2명정도 였는데 부유한 가정에는 400명에 이르기도 했고, 기록에 의하면 4000명이 넘는 노예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황제의 집안에는 야략 2만명이 넘는 노예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하는 이들였습니다. 그리스도인 노예들이 당시 그들의 일터인 주인의 집에서 어떻게 주인을 대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당시의 문화 속에서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살아 있는 소망으로 새로워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 두려움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9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왕같은 제사장이라 불렀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그들이 세상속의 약자의 위치를 가졌지만 '자유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세상의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사람들을 긍휼과 속죄를 통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사환(집안 노예)들이 바로 그 일을 위해 부름받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16절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인이 자유자이며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자인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주인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종된 자의 모습은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하고 온유하게 대하는 주인 뿐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까지도 그러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딛고 승리하기 위해서
그러나 주인에게 순종하더라도 때로는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부당한 고난(19절)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신앙의 길과 인생의 길을 걸을 때 고난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습니다. 그 고난이 찾아왔을 때 베드로는 슬픔을 참으라고 당부합니다. 그것이 아름답다(은혜/χάρις/카리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삶의 길은 죄를 지어서 맺를 맞는 길을 걸을 수도 있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선을 행하는데 고난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그 다음은 고난(어려움) 자체가 없는 삶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그런 고난에 매몰되거나 그것에 의해서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고난이 존재하고 찾아옴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특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집을 관리하는 하인)을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21절 上)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버팀목으로 이 고난을 견딜수 있을까요? 베드로는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우리는 그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본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죄를 지으신 일이 없고,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거짓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22절). 그러니까 죄를 짓고 매를 맞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23절을 보면, “그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셧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이에게 다 맡기셨다.” 이것이 신자가 따라야할 모범이다. 억울한 고난은 신자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이 먼저 그 억울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억울함을 표현하거나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에게 맡기시고 인내하시고 참으셨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전과 같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목자이신 예수님이 앞서 가신 그 길을 따라 그 분을 온전히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언
세상으로부터 택함과 부르심과 구원을 받은 자로서,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라고 강조했는데, 이제 와서는 총독이나 주인에게 복종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신분 제도 안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입니다. 모순되게 보이고,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다른 삶을 살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똑같이 보복하거나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 모든 것을 맡기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는 삶.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선택하고 걸어가야 하는 삶의 방식이고 태도입니다.
'수요기도회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망의 이유를 물을 때 (0) | 2020.11.28 |
---|---|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0) | 2020.11.25 |
성도의 소망 (0) | 2020.11.11 |
하나님의 종으로 삽시다 (0) | 2020.11.11 |
산 돌 공동체(20201104) (0) | 2020.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