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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꿈지기의사랑 2020. 11. 25. 14:27

베드로전서 3:1-7

 

   지난 주에는 세상속에 살아가는 사환(노예)들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제사장의 역할을 하며 살아갈 삶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가정으로서의 아내와 남편에게 주었던 베드로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란 무엇일까를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어보려 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속에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왜 아내인가?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을 '세상속의 제사장으로서 교회'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세상속의 제사장으로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한 복판에 '그리스도인 아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본'을 좇아 세상 한 복판에서 제사장 교회의 역할을 하는 참된 교회의 대변자로 사회속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그리스도인 부자들이나 남편을 선택하고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세상 속의 제사장 역할을 오히려 '약자의 위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아내)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문화적 배경은 여성이 생래적(生來的: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지고 있는)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남편에게 순복해야 한다는 논조가 강했습니다. 유대전통에서도,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 하는 이유가 여성의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지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질서이고 역할일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아내와 남편 모두가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통해, 피차 복종하는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하지만 베드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약한 아내 쪽에 더 많은 권면을 주며, 아내에게 영적, 도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주체적 역할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아내에게 영적, 관계적 '주도권'을 부여하는 것은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 그 이상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됩니다.

 

말이 아닌 행실로(1절)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아니, 그만을 예배하려 든다면 그런 상황이 보통의 당시(그레코로만:그리스와 로마의 양식을 혼합한 예술 양식)의 가정에서 그것도 남편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가정에서 얼마나 큰 일이며, 심각한 갈등과 부조화 심지어는 핍박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인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인 플루다르크는 말합니다. 당시 아내가 남편의 신들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관계에서까지 모두 종속되었던 문화의 일부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 "아내는 자신만의 친구들을 만들어서는 안딘다. 남편의 친구들이 곧 자신의 친구들이다. 그리고 그 친구들 중 최우선은 남편이 모시는 신들이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아내는 남편이 모시는 신들만을 섬겨야 하며, 다른 미신적 종교들이나 이상한 신앙들에 대해서는 단절해야 한다. 여자가 비밀리에 다른 종교적 의식들을 행하면 그것은 그 어떤 신도 기쁘게 할수 없다."

   이러 상황에서 교회는 믿는 그리스도인 아내가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권면 해야만 했습니다. 베드로는 독특한 해법을 제안합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1절) 베드로는 분명히 믿는 아내의 '말 없는' 덕스러운 행동으로 그 믿지 않는 남편은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게 하는데, 그 복음을 말로 전하지 않고 그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으로 곧 삶으로 전한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내들이 자신들에게 순복하는 그 현상뿐입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용어들로 표현되는 복음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들은 복음의 말씀을 귀로 듣고 깨닫지는 못하지만, 믿는 아내의 행동은 주목하여 눈으로 봅니다. 귀로 듣는 복음이 아닌 눈으로 보는 복음을 통해 구원받습니다.

   종교적인 표현(말)으로 나타나는 복음을 거절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신 창조 질서에 이렇게 순복함으로써, 그 창조 질서 안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다고 제시합니다. '말이 없는 행동'이 믿지 않는 사람을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인도하는 이런 역설이 성공할 수 있는 전제 곧 창조 세계의 질서가 세상 속의 교회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중대한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아내

 

   베드로는 이미 세상 속의 교회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경우도 '두려움으로'라는 표현은 남편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분명합니다. 앞 장나온 왕의 경우나, 주인의 경우에도, 나폄의 경우에도, 성도가 마땅히 두려워하며 순복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구체적 인간관계에서 마땅한 질서에 대한 순복함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남편을 '말씀'을 순종하는 자리로 인도할만한 아내의 '말 없는' 행실은 무엇일까요? 베드로는 이에 대해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두려워(경건하며)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생기는 정결함과 단아함입니다. 그리고 그 정결함의 행실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남편에게 순복하는 태도 자체입니다. 

   4절은 아내가 남편을 순복하는 '마땅한' 질서도 '마음에 숨은 사람'을 단장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일임을 보여줍니다. 썩지 않을 장식인 온유하고 정숙한 장식으로 자신을 치장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화를 받아 온유하고 화평한 특징을 갖게 된 '사람의 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숨은 사람을 단장하는 수단이 '썩지 않을 것으로'입니다. 이 썩지 않음은 성령의 온유함과 화평함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이러한 단장의 근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베드로는 그 행실의 근거를 하나님께 신앙의 중심을 두고 있는 아내들의 신앙에 두고 있습니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5절) 그들의 순종이 남편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생명으로 이끄신 하나님, 자신의 삶의 참 희망이신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신앙이 그들로 하여금 남편에게 순종할 수 있는 삶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라의 예시를 보여줍니다. 사라는 여성으로서의 출산의 기능이 멈추어버린 상태에 천사들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이를 출산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고, 그 말씀에 희망을 품고 결국 아이를 출산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그의 남편의 말, 모든 것들이 황당한 순간에도 그의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아내에게 '온유함과 화평함'이 요구될까요? '온유함'은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 남성들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왕(마 11:29)이라 소개하십니다. 신약에서 온유함은 남자나 여자의 성적인 차이에 따른 특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썩지 않을 씨앗' 곧 하나님의 영원한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썩지 않을 생명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모든 성도들의 특징입니다. 또한 '화평함'은 여성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되어지는 성품의 열매입니다. 본문에서 '아내'에게 요구되는 성품과 사역은 모든 성도들이 갖추어야 하고 해내야 하는 것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삶의 본이되어 주셨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선교적 상황에서 갖추어야 하는 성품과 해내야 하는 사역을, 바로 이 믿는 아내들이 믿지 않는 남편들과 사는 가정 안에서 '대표선수'로 모범을 보이고 있는 셈입니다. 

 

맺는 말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본(길)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별히 가정의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받은 우리 이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고 정결한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우리의 가정의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삶의 태도를 통해 우리의 가정을 구원의 생명의 자리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남편으로서 연약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서로 이해하며 생명의 은총을 이어받을 사람으로 알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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