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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설교

하나님의 사랑

꿈지기의사랑 2010. 6. 5. 21:15

예레미야 12:7-13

 

하나님의 버리심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바른길을 가도록 회초리를 드는 부모의 마음이 바로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 가운데 그분의 거처를 택하셨으나 이제는 그들을 떠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7절)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버리심이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이 나옵니다. “내 소유,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자기의 것을 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끔 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기에 종이 조각하나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 것이 사람의 이치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요,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원수에게 넘겨지는 모습을 보셨을 텐데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겠습니까?

 

예화) 스승이신 정태기 목사님이 어린 시절 섬마을의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욕딱지를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그 딱지를 다 빼앗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평소에 그렇게도 자상하던 선생님이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매로 때리셨는데 맞다가 뒤돌아보니 선생님이 매를 부여잡고 때리시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실 유다가 하나님의 거처라는 것은 유다 백성에게 큰 특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다는 하나님 앞에 마치 반항하는 사자나 포학해 길들이기 힘든 무늬 있는 매와 같이 하나님을 향해 끊임없이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더라도 그분의 소유인 동안에는 안전을 보장받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목자, 곧 이방의 우두머리들이 와서 그들을 훼파하고 유린하게 하실 것입니다. 자녀를 징계하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수치를 당함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은 성도에게 최고의 복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의 결국은 패망이기 때문입니다. 참 목자이신 하나님의 보호를 떠난 유다 백성의 마지막은 황폐와 슬픔뿐입니다. ‘파괴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심판의 도구로써 ‘여호와의 칼’로도 표현됩니다. 광야 모든 벗은 산은 원수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며, 온 땅에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파괴하는 자들이 광야의 모든 벗은 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모든 육체가 평안하지 못하도다”(12절)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는 것처럼, 패역한 백성은 좋은 수확을 기대하며 심지만 결코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선지자들을 멸시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내 소유가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9절)

 

   여기서 ‘무늬 있는 매’는 우상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종교적인 혼합주의를 뜻합니다. 즉 가증스러운 변절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고발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황무지와 같이 황폐해져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드는 것은 이것을 그 누구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회계하는 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를 황폐하게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폐함은

    이를 마음에 두는 자가 없음이로다”(11절)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를 보며,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탄식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삶의 우선에 두자

 

   예화)어떤 강사가 학생들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 실험을 한 가지 해봅니다.”라며 커다란 항아리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옆에는 상자 하나를 올려놓고, 주먹만한 큰 돌을 하나씩 항아리 속에 옮겨 넣기 시작했습니다. 항아리에 돌이 가득 차자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예’하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조그만 자갈 부스러기를 한 움큼 꺼내어 항아리에 집어넣고 흔들었습니다. 주먹만한 돌 사이에 조그만 자갈이 가득차자,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당황했습니다. 이번에 그는 모래주머니를 꺼내어 주먹만한 돌과 자갈 사이의 빈틈을 가득 채운 뒤 다시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주전자를 꺼내어 물을 항아리에 부은 후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실험은 만약 큰 돌을 가장 먼저 넣지 않았다면 그 큰 돌은 영원히 넣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큰 돌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항아리에 가장 먼저 넣어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휘시스는 “인생의 목적은 우리의 자유를 찾는 데 있지 않고 우리의 주인을 찾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가장 우선되는 것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우리의 삶이 채워지지 않고서는 결코 가족, 물질, 직장, 우정 등 인생에 차곡차곡 채워져가야할 어떤 것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안에 주님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그러면 그 후의 것들 역시도 가득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배반하고 우상을 섬김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들을 심판하고 대적에게 넘기는 순간에도 여전히 그들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돌아와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중심에 두고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그 마음, 그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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