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1-6( 20230913)
들어가는 말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받을 때 그들은(종의자녀, 율법주의자들) 지옥으로 영원히 추방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로서 우리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답게 복음 안에서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감으로 천국 기업을 이을 자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복음으로 인한 어떠한 핍박도 천국의 소망 안에서 이겨 나가 믿음에 승리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자유자로서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삶이 무엇인지를 묵상함으로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는지 생각해보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1절) 혈통과 관계없이 믿음의 언약을 따라 자녀가 된 사람은 당연히 약속을 따르는 자유의 자녀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자유와 상속권과 약속을 받았으니 굳건해야 합니다. 두려워 함은 종의 자녀들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유대에서 내려온 자들의 거짓복음, 다른 복음을 듣고 미혹되어 종의 멍에를 다시 메려 해선 안 됩니다.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은 권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종의 멍에를 거부하기 위해 군인들처럼 굳건하게 서 있으라고 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쳐들어 오는 적들을 맞아 자기가 맡은 구역을 끝까지 사수하듯 굳건하게 서서 종의 멍에를 씌우려 하는 자들을 대하여 맞서라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모든 죄인들을 율법의 멍에로부터 구원하셨음에도 다시 율법에 의해 할례를 받는다면 그 자유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아브라함의 여종인 하갈에 비유하여 율법을 따르는 자들을 종의 멍에를 멘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복음의 의미를 상실하고 구원에서 떨어져 다시 사망의 권세 아래로 가는 것과 같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1절)
은혜에서 떨어진 자
바울은 할례를 받지 않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것은 할례를 받게 되면 율법 전체를 행할 때만 구원받을 수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율법을 다 지킬수 없어서 죄인의 모습으로 남게 됩니다. 그것은 율법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던 사람이 그리스도에게서와 은혜에서 끊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어느새 갈라디아 사람들은 유대에서 온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교사들의 미혹에 떨어져 할례와 같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만일 거기서 돌아서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육체의 행위들, 육체에 새긴 증표들이 의에 기여한다는 신념을 갖는 순간 그리스도께서 남김없이 흘려주신 대속의 피는 효력을 잃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그리스도에게서도 은혜에서도 떨어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자가 있는데 그것은 그가 심각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를 버렸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는 것이라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에서 쉽게 떠나는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과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았기에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갈라이다서 1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갈1:6),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9) 바울이 이처럼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예수의 길을 떠나 살아갈 때 그들이 은혜와 상관없는 인생으로 살아갈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종의 멍에가 아닌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이 성령으로 믿음을 좇는다고 한 것은 육체로 율법을 좇는 것과 대조하여 표현한 것으로 우리가 믿음을 갖는 것이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라 말합니다. 율법을 행함이 인간 자신의 의를 나타내려 한 것인데 복음을 믿는 것이 인간 자신만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면 이 또한 인간의 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복음을 믿는 것까지도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로 인한 것이라 말합니다. 즉 우리가 은혜에서 떨어지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5절) 우리가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믿음을 좇게 된 것은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의의 소망이란 성도들의 의롭게 되는 소망을 의미합니다. 성도로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 육신의 연약함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들은 완전히 의로운 상태로 변화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믿음 안에서 그 날을 기다리는 소망 중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의 삶을 신앙 중심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가는 말
오늘은 우리가 할례와 같은 일을 다시 행함으로 율법의 멍에를 다시 메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 십자가의 사랑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종의 멍에를 다시 메는 것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성령을 통해 주신 믿음을 따라 살아갈 때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역사, 생명의 역사가 우리의 삶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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