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1-4
들어가는 말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내버려두었다면 괜찮을 것을 공연히 건드려 화(禍)를 자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솝우화에 보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마울에 부지러한 농부 부부가 살았습니다. 거위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이 거위는 매일 한 개의 황금알을 낳았습니다. 그로 인해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점점 게을러 졌습니다. 욕심은 커져만 갔습니다. 어느날 농부의 아내가 꾀를 내는데, '여보, 좋은 수가 있어요. 거위 배를 가르는 거에요, 매일 하나씩 황금알을 낳는 걸 보면 뱃속에 황금이 많이 들어 있는게 틀림없어요" 그래고 부부는 거위의 많은 황금을 생각하면 거위의 배를 갈랐습니다. 거위의 뱃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낳았습니다. 두 사람은 욕심을 채우려다가 일을 긁어부스럼 만들어 버린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러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자신이 찾아가는 것이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은가를 놓고 고민하였고 결국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방문하지 않는 이유 : 근심을 주지 않기 위해(1-2절)
고린도서를 읽으면서 바울에 대해서 드는 생각은 그는 천상 목회자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울의 목회의 초점은 어떻게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세우기 위한 일에 온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두 번 방문했는데, 두 번째 방문에서 고린도 교회의 거짓 교사들로 인한 문제로 인해서 교인들을 꾸짖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교인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태에서 자신이 교회를 방문하는 것은 바울에게도,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근심이 될 것이 뻔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바울을 오해하고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바울이 오면 교회적인 치리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울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또 그들에게 슬픔과 고통의 방문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가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바울은 인간 관계도 중하게 여겼지만 성도들의 모습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글을 보내고 즐거운 모습으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후 1:23-24) 바울은 성도들이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자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에서 그들이 자신의 치리와 같은 일들을 통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변화되는 길을 행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들이 믿음 안에서 더욱 자라는 신앙의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한 동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1절)
근심이 아닌 기쁨을(3절)
바울은 성도들에게 진정한 기쁨을 선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단지 세상적인 인기를 누리는 목회자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잘못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인기 좋은 목회자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그들을 바로 새우는 목회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진리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그들을 향해서 책망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여 진정으로 그들이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들었던 채짹과 같은 행동들은 그들을 미워해서 행했던 일들이 아니라 그들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벌어졌던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서로에게 진실된 모습으로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3절)
넘치는 사랑의 목자(4절)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책망은 사랑의 채찍이었습니다. 자신이 믿음으로서 낳은 자녀들인 교인들을 향해서 그는 부모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기에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에서 동떨어진 행동을 들으면서 그는 마음에 큰 고뇌와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환난을 경험하는 것같고 애통하는 마음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던 것입니다. 바울은 궁극적으로 그들이 바른 신앙(회개)을 통해서 기쁨을 회복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에서도 그들을 훈계할 때 사랑의 마음으로 훈계한 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
나가는 말
여러분의 삶에도 피차 사랑의 권면과 책망이 있기를 원합니다. 무작정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책망만을 하고, 자기 주장을 관철 시키려고 한다면 부딪힘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서로 용서해주고 포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아름다운 공동체로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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