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27-34
들어가는 말
하나님은 십자가에 처형당해 무덤에 묻혔던 예수를 성령을 통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예수로 인해서 잠자(죽을)는 운명에 떨어질 우리 모두 새롭게 창조되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그날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망의 권세 아래서 우리를 여전히 사망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하는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가 임하게 될 것이며, 그 때에 우리를 짓누르던 사망의 권사가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께 이기신 사망의 권세 아래가 아닌 하나님의 생명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중요성
지난 주 말씀을 나누면서 모든 원수를 멸하시는데, 그 마지막 원수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권세가 통치하던 삶이 끝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27절)은 시편 8:6절을 기독론적 관점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엡 1:22).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악한 세력은 파멸되기 시작했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죽음이 완전히 멸망당할 때 시편 8편은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전체를 지배하시지만 당연히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신 하나님은 그 모든 것 안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악 된 자아가 죽고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지닌 죽음과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세례는 무의미한 형식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세례는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예식입니다. 그런데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죄를 용서받을 수 없기에 죄된 삶이 죽는 세례는 의미없는 행위이기에 그것을 받을 사람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미래에 대한 소망인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부활 신앙은 현실적인 죄악들로부터 성도들을 지키는 지주 역할을 하며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의 모든 윤리적 명령들의 고귀함이 무가치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4) 그렇기에 부활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2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만물을 복종시키는 것은 나라를 하나님게 바치는 것과 관련되고, 하나님에 대해 그리스도 자신과 만물이 복종하는 것은 종말의 시간에 발생할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종말론적 관점의 의미를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만유의 주로서 밝히는 것은 지혜를 구원과 창조의 매개자로 숭상하는 고린도교회의 은사주의자들을 반박하려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생명을 건 전도
바울이 자신을 부인하고 온갖 고난 속에서도 복음 전도 사역에 모든 정열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활이라는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현재의 고난을 참고 견뎠습니다. 부활 신앙은 그것을 믿는 자에게 매일의 삶을 경건으로 무장하게 만들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타락과 나태에 빠지게 합니다. 바울은 부활을 믿었기에 때마다의 위험을 무릎쓰고 또한 날마다 자신을 죽이며 맹수와 싸우는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도한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부활이 있기에 어려움을 견딜수 있었음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30절)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면서 동족인 유대인들과 로마의 통치자들로부터 내외적인 위협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바울뿐 아니라 로마의 통치하에 있었던 모든 사도들이 겪었던 위험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모습으로 그들은 매일이 살얼음판을 위를 걷는 것과 같이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부활의 소망이 그들에게 있었기에 그 어려운 순간들과 상황들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그의 복음 증거는 생명을 건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속에서 바울은 생명을건채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기 위한 복음전도의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
분별있는 신앙을 가지라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32절)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동기부여를 통해서 우리의 삶의 걸음을 걸어가게 됩니다. 바울을 포함한 당시의 순교자들과 사도들이 콜로새움에서 맹수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그 두려움과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들의 순교의 동기가 단순히 인간적인 것이라면 의미없는 것이 됨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확고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세상적인 쾌락(술취함)에 빠져있는 이들을 향해서 깨어 의를 행하라 말합니다. 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간의 쾌락을 즐기는 삶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분별력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분별력을 잃고 부활을 부인하게 될 때 영원한 허무와 절망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부활 신앙을 간직하고 사십시오.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34절)
우리는 매일 고난의 연속적인 삶속에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변의 상황은 늘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신앙을 지키며 사는 것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바울의 말에 다시 한번 귀기울여 봅니다. 사도들이 어려움을, 죽음을 알면서도 복음의 길을 걸어가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활의 소망이 그들에게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겠지만 그것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힘은 복음의 능력임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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