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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와의 사귐

꿈지기의사랑 2021. 3. 24. 17:39

요한일서 2:7-11

 

들어가는 말

 

   2주전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귐(1:5-10),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그리스도와의 사귐(2:1-6)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귐 안에 있다면 단순히 머리로 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그 말씀 대로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걸어 가신 길을 따라 우리도 실천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지난 시간에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삶의 모습인 형제와의 사귐에 대한 이야기를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옛 계명(7절)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하고 있을 그 때에도 많은 이단의 가르침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무엇인가 새로운 내용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계명 – 곧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은 – 언제나 옛 계명입니다. 과거에도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선포되었고 오늘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게 선포되며, 이후 제 아무리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해도 예수님의 계명, 곧 예수님의 가르침은 동일하게 선포되고, 동일하게 가르쳐야 하는 변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의 가르침, 성경의 교훈은 언제나 옛 계명입니다. 우리가 선포하고, 우리가 듣고, 우리가 믿는 복음의 내용 – 곧 예수님의 계명은 – “옛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이른바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들, 이른바 기도 가운데 특별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조금도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에서 변함없이 기독교의 경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지요. 그런 점에서 성경은 옛 언약입니다

 

새 계명(8절)

 

   본문에는 옛 계명, 그리고 새 계명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른 두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옛 계명은 그저 과거의 유물로 지금 우리 시대에는 아무런 의미도, 감동도,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단지 옛 계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새 계명이 되어서 우리의 삶에 어둠이 지나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밝은 진리의 빛을 비추는 능력의 말씀이요 능력의 계명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곧, 변함없는 옛 계명이 지금도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만드는 새 계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옛 계명, 이미 알고 있으며 믿고 있는 그 복음의 내용이 우리의 마음에 새롭게 움직일 때 비로소 신앙생활의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옛 계명, 그리고 새 계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붙잡히시는 바로 그날 밤,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 크신 사랑으로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 놓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믿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죠. 예수님의 계명, 옛 계명이면서 동시에 새 계명이기도 한 예수님의 계명 안에는 예수님께서 먼저 죄인이었던 우리를 그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여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것 을 알고 그 사랑을 깨달았다면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옛 언약이요, 동시에 새 언약입니다.

 

우리의 해야 할 일(9-11절)

 

  하나님의 계명의 항상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머리로 알았다고 하면서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변하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이 완수되어 있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말로 하는 것과는 반대의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겉이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는 포장이 되어 있어도 형제를 사랑하는 삶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형제를 미워하거나 적대적인 감정으로 대하는 사람은 주를 사랑함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됩니다. 누가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눅 8:21) 형제를 미워하고 그들이 당하는 어려움들을 외면하는 성도는 주 앞에서 스스로 속이는 자들이며 그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보응을 받게 됩니다. 

   무엇인가 우리의 눈을 가리게 된다면 우리는 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없게 됩니다. 요한은 우리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어두움으로 우리의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고대에는 종종 눈이 악한 충동의 원천이 되는데 사람들이 짓는 많은 죄들이 사람의 눈을 통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에서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이들은 그들의 행위 뿐 이나라 생각마저도 어두움 속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멀게'한다는 것은 사람의 미워하는 감정이 성도의 판단 능력을 흐리게 만들어서 계속 악을 행하게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결여 되면 적대감, 편견등의 눈이 생겨나게 되고 그 눈으로 바라보기에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사랑하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 우리 교회가 따뜻한 교회가 되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와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교회가 됩니다. 서로 용납하고 사랑함으로써 아름다운 형제의 사귐을 이루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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