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1:1-4
들어가는 말
요한일서는 사도요한이 에베소에서 기록한 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 서신의 배경에 초기의 영지주의가 들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영지주의는 신약 성서 전반에 걸쳐 퍼져 있는 이단 사상입니다. 그리스 로마 철학의 형태인 영지주의가 150년경 로마 제국의 사상계에 깊숙히 침투하고 있었으며 1세기 후반 수십년간에 걸쳐 기독교와 맞서서 교회 안에서 심각한 혼란과 분열을 야기시켰습니다. 영지주의는 본질상 물질은 악하며 영은 선하다는 이원론적 주장을 펼치는 이단입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영혼이 죄 만은 몸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몸의 행위에 대해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이들의 이원론은 그리스도를 믿는 일부 신자들의 반율법주의, 즉 도덕률의 폐기와 영적 타락에 귀결됩니다. 영지주의 자들은 구원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서의 신앙에 의한 것을 보지 않고, 그들의 이론과 사상을 아는 것으로 구원의 가능함을 주장합니다. 교회 안에서 영지주의자들은 거짓 교사와 거짓 가르침의 위치에 선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은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가?(1절)
요한은 편지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편지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1절) 그가 전하려는 것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씀이란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란 '만물을 지배·구성하는 질서·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창조의 원리를 통해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생명의 원리가 태초부터 있었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라 밝힙니다. 온 우주를 창조한 생성의 원리(생명)이며, 그 원리의 근원이 하나님이라 밝힙니다. 동시에 그분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인 생명을 품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에게 오신 분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것들이 조성되기 이전 부터 그분이 함께 계셨고, 그분을 통해 모든 만물이 조성되었음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요한 일서의 전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요한은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이유를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실제로 목격하다/새번역/공동번역개정)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1절) 그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생명으로서 육신을 입으시고 나타내신 바 되셨습니다. 요한을 비롯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를 그들의 삶으로 체험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자신들의 오감으로 체험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이 당시의 영지주의 이단들이 육신을 부정한 것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고, 느끼고, 만났다는 것을 강조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출현
성경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교제를 하지 못하는 상태를 죽음과 사망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2) 그리고 사망의 원인이 죄라고 말합니다. 비록 인간이 영원히 살아 움직인다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는 생명을 얻은 존재라 말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원천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생명이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사귐)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사도 요한이 말하는 생명이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생명을 말합니다. 그 생명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삶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원리가 세상을 통치하는 삶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생명의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 우리의 삶에 나타난 것을 보았고, 증거했으며 너희에게 전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것은 그분을 단순히 눈을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께 배우고 그분의 생명을 체험함으로써 그분을 온전히 알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 편지를 읽는 독자들이게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생명의 말씀이신 그분이 우리의 삶으로 오셨음을 자신이 보았기에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 전하고 있노라 말하는 것입니니다.
편지의 목적(3-4절)
우리가 말이나 행동을 할 때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편지는 어떤 대상을 향해 그에게 하고 싶은 어떤 말을 전달하기 위해서 씌여지게 됩니다. 특별히 요한 일서는 4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편지가 쓰여졌습니다. 첫째, 당시의 이단 사상인 그리스도 가현설에 대하여 경고합니다.(2:26), 둘째, 영생에 대한 확신을 주려는 데 있습니다.(5:13), 셋째 성도들로 생활에 있어서 기쁨이 충만케 하려는 데 있습니다.(1:4) 마지막으로 성도들이 이단 사상에 물들어 죄를 짓지 못하도록(2:1)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은 세번째 목적에 해당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생활에 기쁨을 충만(가득차게)케 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은 공포와 두려움과 슬픔에 잠겨 있는 자들에게 기쁨과 확신을 줍니다. 죄로 인해 사망의 올무에 매여 신음하고 있는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죄 씻음의 해방을 선포하고 사망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자유함을 줍니다. 이복음 안에서의 충만한 기쁨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구원의 은혜를 받아 영적 교제를 나누는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복음을 전파하고 기록한 것은 우리들에게 복음 안에서 기쁨을 충만하게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기쁨을 충만케 하기 위해서 모진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복음 안에서 기쁨이 충만해 진 우리도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 복음의 기쁨은 성도들의 영적 교제를 통해 더욱 충만해지고 풍성해 집니다.
저와 여러분의 매일의 일상도 사도 요한이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생명의 사귀 가운데서 살게 된 체험을 증거함으로 편지의 수신자들과 하나괴 되는 경험을 하기를 원해 이러한 편지를 쓴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 사귐안에 들어서 함께 귀한 은혜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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