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지기의생각나누기

꿈지기의 생각을 함께 나누어 보아요

목회와 일상의 대화

수요기도회설교

세상을 사랑치 말라

꿈지기의사랑 2021. 3. 31. 18:02

요한일서 2:12-17

 

들어가는 말

 

   지난 주 우리는 형제와의 사귐에 관한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결여 되면 적대감, 편견등의 눈이 생겨나게 되고 그 눈으로 바라보기에 사랑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세상을 사랑치 말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은혜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아 : 세상을 사랑치 말아야 할 사람들(12-14절)

 

   요한은 편지를 쓰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을 '자녀들아'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아이들, 아비들, 청년들로 불리웁니다. 이들이 악한 자를 이겼고(13절), 흉악한 자를 이겼다(14절)고 말합니다. 이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함으로 이길 수 있는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생명의 말씀이신 아들을 믿고 그와 사귀는 사귐 안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슴이 그들 안에 거함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신 '그 아들' 안에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심령에 기록되어 약속을 성취할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아들과의 사귐을 통해서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모두 아버지를 알고 예수님을 알고, 말씀 안에서 악한 자를 이겨야 합니다. 한 번만이 아니라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말씀 안에 거하면서 악한 자를 이기고, 태초부터 계신 이를 사랑 가운데서 알아가는 분명한 증거와 고백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데 세상이 도대체 뭐야?

 

  성경이 세상이라고 말할 때, 세상은 적어도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신 세상이고, 비록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자연도 타락하였으나 여전히 세상은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중립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을 지칭할 때도 세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사람들은 모두가 다 죄인이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고 악의 세력에 의해 조종되는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할 때, 그것은 피조된 물질 세계가 아니라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할수 있습니다. 가령 요한복음 1장 10절을 보면 그 구별이 잘 드러납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앞에 두 번 등장하는 ‘세상’은 첫번째 의미에서 창조된 세계를 말합니다. 세번째 나오는 ‘세상’ 즉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은 두번째 의미의 세상 즉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미워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할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가리키는 세번째 의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세속적인 방향을 향하여 가는 체제를 말합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세상의 시스템, 세상의 가치관, 물질 자체 라기 보다 물질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쾌락, 유흥과 야망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사탄을 ‘이 세상 임금’이라고 하셨고(요 14:30; 16:11), 사도 바울은 ‘이 세상 신’이라고 불렀습니다(고후 4:4). 사도가 사랑하지 말라고 한 세상은 마귀의 영향력 아래서 번창하는 악한 체계와 정신과 관습과 그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할 때 이것은 창조된 세상을 의미하거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세상의 악한 시스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 사랑하지 말아야 하나?

 

   요한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서 사랑하지 말라 합니다.

  첫째는, 세상 사랑과 아버지 사랑은 공존할 수 없기(15b) 때문이라 합니다. 세상을 향한 사랑과 아버지를 향한 사랑은 상호 배타적입니다. 15절 하반절에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에 의해서 지배를 받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의 지배를 받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야고보서도 말씀합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두 대상을 향한 사랑이 한 사람의 내면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16절 하반절에, “다 아버지께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그 원천이 아버지께 있지 않고 세상에 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우리는 함께 사랑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세상과 그 정욕은 다 지나갑니다(17a). 지나갈 것,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 결국 그림자와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말입니다. 17절에서 말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지나가버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에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타락한 이 세상의 악한 체계는 육체의 정욕(개인의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필요만 채우면서 사는 것), 안목의 정욕(보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고 우리로 하여금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저것을 소유하게 된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모든 생각) 그리고 이생의 자랑(영원한 생명과 대조되는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의 삶, 또는 소유와 재물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태도입니다)으로 가득합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세상이 인간에게 줄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기에, 세상의 악한 체계 역시 그 임금인 마귀의 기만을 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삶의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아들 그리스도 그리고 형제와의 사귐속에서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인 사랑을 행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요기도회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  (0) 2021.04.14
부인하는 자 vs 거하는 자  (0) 2021.04.03
형제와의 사귐  (0) 2021.03.24
그리스도와의 사귐  (0) 2021.03.17
하나님은 빛이시다  (0) 202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