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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빛이시다

꿈지기의사랑 2021. 3. 10. 17:37

요한일서 1:5-10

 

들어가는 말

 

   지난 주에 요한이 왜 이 편지를 썼는지, 그가 전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말씀이시고,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출현하셔서 그분을 체함한 사도가 그 체험속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을 경험하고 우리에게 오신 그 생명의 말씀을 증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그 소식을 전했다고 말하것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에 이어서 빛이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와 그분과의 사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더 나누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5절)

 

   요한은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사람들의 생명이라고 표현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의 빛'(4절)이라고 표현합니다. 빛은 만물에게 생명을 주는 속성이 있습니다. 요한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말하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의 죄를 사하시며 영생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곧 우리의 생명이요, 소망입니다. 물질과 영예도 우리 영혼에게 생명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악하고 불의한 이 세상에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것을 힘입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시험과 시련으로 인해서 넘어질 수 있는 우리의 삶이지만 빛이신 하나님, 즉 우리의 삶을 밝히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리의 삶에 넘어짐이 사라지게 됩니다. 또 넘어졌던 자, 헤매이던 자들이 그의 빛을 보고 바른 길을 찾고, 일어서서 넘어지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5절에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에서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성품적인 면에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본질적인 면에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빛’은 하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단어로서 ‘하나님의 신성과 거룩’을 나타냅니다. 그러하기에 여기에서 하나님을 ‘빛’으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신성과 거룩’을 강조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면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다고 믿었습니다. 신약성경 디모데전서 6장에도 하나님께서 사람이 가까이 가지 못할 빛 가운데 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완전하신 빛이시기에 그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중재자 한 분이 나타나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더욱 분명하게 계시하셨고, 또한 끊어졌던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귐이 다시 시작되었고 빛이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빛의 아들들처럼 행하라고 가르치셨고, 사도바울도 에베소서 5장에서 너희는 빛의 자녀들이므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빛의 열매를 맺고 열매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고 교훈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나아가는 길 : 죄의 고백(6-9절)

 

   서신이 기록될 당시 하나님을 믿는다하면서도 믿기 전의 악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그대로 갖고 사는 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음을 보게 합니다. 그러했기에 지금 사도요한이 이러한 충고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복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퍼뜨리는 악한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둠에 행하면’에서 행한다는 말은 단 한번 행하는 것이 아니고, 반복적이고 계속적인 행함을 뜻합니다.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는 습관적인 삶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과 동시에 어둠속에서 행하던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에는 또 다시 예수를 믿기 전과 같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가 되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언급했지만 요한일서가 기록되던 당시 교회를 타락시키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죄로부터 자유하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한 영적인 지식을 선물 받은 사람은 어떠한 죄로부터도 자유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영적지식을 가진 자에게는 더 이상 죄의 원리가 지배하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죄 가운데 행하며 교회를 타락시키는데 일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있음에도 죄가 여전히 우리의 삶이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미운사람은 밉고, 싫은 것은 싫습니다. 그러하기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가르침인 '빛 된 말씀'을 가까이하고 이 말씀대로 살려는 '결단'과 어둠을 이기기 위한 '믿음의 수고'들이 요구 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유혹하는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들을 이겨내야만 마지막 그날 빛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의 실체, 곧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진정한 깨달음의 고백이 있을 때 성도 간에 아름다운 사귐이 시작되어지고 그로 인해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만 그러나 성도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임을 늘 기억하여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성도의 합당한 태도는 죄를 지었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죄)을 인정하여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구속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10절)

 

   우리가 주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일반 법정에서 죄를 인정하는 것은 곧 ‘실형이 선고될 것임을 확인하는 행위’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은 이와는 전혀 다릅니다. 죄를 인정하는 것 자체는 내 실수와 허물과 잘못과 죄를 인정하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인정은 ‘죄를 사함 받는 선고를 확정’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죄로부터의 자유를 가져오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죄로 인해 가슴을 찢는 고통 중에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오직 겸손하고 공손한 태도로 마음을 다해 나의 잘못과 실수와 죄를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인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가 지금껏 체험하지 못한 죄사함의 놀라운 용서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의 사귐이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혜, 하나님과의 사귐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간절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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