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12-26(구약 1015면)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하나님의 크고 높으심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40:1-11절에서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된다고 선포했는데, 그 당시 이스라엘의 무기력함을 볼 때 실현성이 없어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결코 의심치 않고 그분만을 앙망하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강조하며,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오묘함(12-14절)과, 하나님 앞에서 열방들의 세력이 보잘 것 없음과(15-17절), 하나님 앞에서 우상들의 헛됨과(18-20절), 하나님 앞에서 세상 권세자들의 덧없음(21-24절)과, 하나님만이 모든 권능의 원천이심(25-31절) 등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논하고 하나님만을 앙망하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비교하다라는 말을 찾아보았습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둘 이상의 것을 견주어 공통점이나 차이점, 우열을 살핌”이라 되어 있습니다. 즉 무엇인가를 비교하기 위해서 둘을 맞대어 본다는 의미입니다.
놀라운 지혜와 능력의 소유자(12-14절)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사 40:12-14)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뛰어나다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창조주를 넘어 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너무 깊어서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의 능력 또한 너무 커서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사 40:15-17)
하나님과 비길자가 었습니다.
12-17절까지의 내용의 보충설명이면서 동시에 그 다음 내용의 서론에 해당하는 구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던 우상과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다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핵심적인 말씀을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사 40:18) 그렇습니다. 그 어떤 형상으로도 하나님을 비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113편 4-6절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그 누구와도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匠色, 옛날에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던 사람)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사슬을 만든 것”(사 40:19)이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사 40:20)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遮日,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치는 장막)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草芥, 지푸라기)같도다.”(사 40:21-24)
교회 :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공동체
최종적인 결론입니다.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사 40:25).” 하나님과 비교할 이가 없으며 동등한 신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사야 선지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 세계를 눈을 들어 살펴보라고 합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 40:26)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또한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에 오십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놀라운 말씀이죠?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 에베소서에서 교회의 본질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그 말씀이 바로 교회를 통하여 역사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세상 모든 만물을 온전하게 완성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말씀이죠? 최근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있지만, 결국 교회만이 희망입니다. 지금 정치가 세상의 희망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거대 양당이 끊임없이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또 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는 좋게 말하면 역동적입니다. 쉴 틈이 없이 발전합니다. 그러나 그 역동성에 내재한 잔인한 역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등할수록 빨리 발전하지만, 발전할수록 불평등을 낳는다.”라는 역설입니다. 지금 민주화와 평등을 실현하여 우리 사회가 발전했지만, 기실 그 과실은 누가 누리고 있나요? 발전할수록 불평등이 강화되어 불의하고 힘 있는 자들이 그 과실을 독점하여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덕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로남불’이죠? 상대적인 관점에서 서로 옳다고만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상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영적 리더로서 올바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인간의 나약함, 우상의 무익함과 비교하여 나열하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의심과 원망을 버리고, 한없는 위로와 새로운 능력과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우상은 인간의 세계관을 담을 뿐 창조주 하나님의 세계관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또한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과 불안이 생길 때 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자 노력하며,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새 힘을 얻게 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하루를 살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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