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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

꿈지기의사랑 2020. 5. 30. 22:29

에스겔 47:1-12

 

   본문은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상이 나옵니다. 새로운 성전에서는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1-5절).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을 천 척마다 측량을 하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천 척'은 대략 500m정도가 됩니다. 에스겔이 500m를 갔더니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고, 또 500m를 갔더니 무릎까지, 그리고 500m를 더 갔더니 허리까지, 그리고 또다시 500m를 갔던니 물이 가득 찼습니다. 이러한 환상을 에스겔은 보았습니다. 이 환상은 새로운 성전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여 점점 물이 차올라 처음에는 발목->무릎->허리->결국은 가득차서 헤엄을 쳐야 할 만큼 물이 불어났습니다. 마지막 수위는 인간의 의지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주도권을 내려놓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47장에서 말하는 '물'은 성전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뜻합니다. 생수가 흘러나와서 차고도 넘친다는 것은 생수의 강이 충만한 상태 곧 '성령의 충만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환상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8-12절) 8절은 물이 흐르는 방향을 보여주는데요. 물이 동쪽 아라바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동쪽 아라바는 사해를 가리킵니다. 사해는 남북 방향으로 67km에 걸쳐있는 완전히 폐쇄된 바다입니다. 동서로는 18km에 이릅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의 국경과 접하고 있습니다. 사해는 염도가 매우 높습니다. 사해는 사막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강우량이 적고 불규칙합니다. 사해의 짠물은 밀도가 높아 사람의 몸이 위로 쉽게 떠오릅니다. 고농도의 염분 때문에 세균을 제외하고는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합니다. 지중해 바닷물 1리터당 소금 함유량은 37그람이지만, 사해 바닷물의 소금 함유량은 275그람이나 됩니다. 사해의 소금 함유량이 높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해는 닫힌 바다에 속합니다. 요르단 강으로 물이 유입되는 갈릴리 호수와 반대로 사해는 다른곳으로 흐르지 못합니다. 두 번째 이유로 더운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연중 25~40도에 이르는 더위로 인해 물의 상당수가 증발해버립니다. 홍수가 일어났을 때 요르단 강이나 작은 하천을 통해 유입된 물고기들도 이곳에서는 금방 죽고맙니다. 즉 죽은 장소와 마찬가지인 곳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사해로 들어가서 죽음의 바다를 살립니다.

   10절의 '큰 바다'는 '지중해'를 가라킵니다. 곧 지중해에 있는 많은 물고기와 같이 사해에도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들이 몰려 들 것이라 고 합니다. 다시 말해 성전에서 나오는 생명수가 사해로 흘러 들어가서 죽은 바다를 소생시켜 각종 생명체들이 살아나게 함으로 지중해와 같이 많은 물고기들로 가득차게 됩니다. 그래서 그 곳에 어부가 와서 물고기를 잡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11절을 보면 사해의 늪과 웅덩이 물은 되살아나지 않은 채, 소금을 얻을 수 있도록 남아있다고 합니다. 사해는 거대한 소금 매장지로도 유명합니다. 소금은 희생제물을 포함한 음식을 보관하거나 양념을 하는 데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소금을 얻을 수 있는 늪과 웅덩이 물은 그대로 남겨둘 것이라고 합니다. 

   12절에서 먹는 실과와 약 재료는 하나님의 축복을 묘사합니다. 그런데 왜 '생명수는 동쪽으로 흐르고, 왜 사해로 흘러가는 걸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 '사해'(약 해발 -450m), 즉 '죽음의 바다'입니다.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해가 동쪽에, 성전은 서쪽에 있기에 물이 동쪽으로 흐른 것입니다. 죽음의 바다에 생명수가 들어가서 그 바다를 소생시킵니다.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바꾸는 것입니다. 죽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이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받아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합니다.성령의 생수를 교회가 받아 살아나고, 목회자와 성도가 살아나서 그 충만함으로 세상에 나아가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려야 합니다.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이 생명체가 살지 않던 사해를 살려서 지중해와 같이 풍성하게 변화시킨 것처럼, 죽어가는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 오늘 교회가 해야 할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전환하는 일은 교회에 맡겨진 사명입니다. 37장의 마른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신 것처럼 모든 불가능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주시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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