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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하나님을 앙망합시다

꿈지기의사랑 2020. 11. 14. 21:38

이사야 40:27-31

 

한해의 결실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인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한 해 동안 잘 달려왔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이 시간 어린양의 보좌에 앉으신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노고를 아시고 위로하십니다.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할까요? “고생했습니다. 힘들지만 잘 해냈습니다. 잘 달려왔습니다. 대단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힘과 용기를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예화1) 어머니의 감사(목사님의 이야기)

   저희 어머니는 혼자 살고 계십니다.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제가 하는 일에 혹시라도 불편함을 주실까 봐 극구 혼자 사는 것이 편하시다면서 지내고 계십니다. 그런 어머니가 매번 걱정되지만, 저는 교회에 목사로 있다 보니 신경 쓸 것이 많아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찾아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뵙고 갈 때마다 어머니는 저를 보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범아, 밥 먹고 가라." 매번 하는 말씀인지라 거절할 때가 많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미 밥을 먹고 나오기도 했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훌쩍 넘은 저로서는 어느덧 어머니의 밥상보다 아내의 밥상이 입에 잘 맞기에 거절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 어머니의 집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어머니가 조용히 혼잣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아한 제가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어머니, 밥을 먹고 가는 것은 저인데 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건가요?" 어머니는 그런 저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감사하지 않겠니. 아직 내 아들에게 밥을 해줄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내 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지...”

   다리가 아파서, 허리가 아파서 몸을 가누기가 힘든 데도 자식에게 해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무언가를 받아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줄 수 있다는 게 있어서 그저 감사하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십니다. 그게 '어머니의 감사'입니다.

 

원망-절망의 절규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했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고 느낀다면 얼마나 공허할까요? 아무도 도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더 힘들게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외로운 싸움이요, 소망없는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사야서 기자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할지도 모릅니다. "주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표준새번역) 이것이 인간의 마음일 것입니다. 억울한 일, 탄식할 만한 일을 당했음에도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보이지 않을 때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은 억울한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서 왜 하나님은 무관심하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고달픈 포로 생활에서 벗어날 길이 전혀 없는 것 같아서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기자는 그러한 모습을 향해서 어째서 그렇게 원망과 불평을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화2) 구미호뎐의 한 장면

요즘 구미호뎐이라는 드라마가 방영중입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이연이라는 형과 이랑이라는 동생사이의 오랜 오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무고한 인간을 죽이는 동생을 막기 위해서 그 동생을 칼로 베는 일이 있었습니다. 동생인 이랑은 평생 그것이 마음에 남아 형이 자기를 버렸고 죽이려 했다는 오해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둑시니의 함정에 빠져 아귀의 숲에서 동생이 아귀들에게 쫓기며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을 때 그의 형 이연이 찾아와 그를 구하러 옵니다. 동생을 구하러 온 이연은 과거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 검은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어. 난 단 한 번도 표적을 놓친 적이 없다. 네가 내 칼을 맞고도 왜 살아있는지 그 나쁜 머리로 잘 생각해봐. 나는 한 번도 너를 버린 적이 없어라고 말해 두 형제의 과거부터 엉켜온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고통을 겪고 있는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할 그들이 회개하기는커녕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까지 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모습 역시도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한 채 원망하고 불평하던 이스라엘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영원자, 창조자 하나님

 

   시각과 청각에 이중장애를 가졌던 헬렌 켈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매일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라. 나에게 잃은 것을 한탄하는 시간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는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또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는 자를 향해서 이사야서 기자는 너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했냐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분이시며, 창조자이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시공을 초월하신 하나님, 제한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시기에 그는 인간이 느끼는 그 어떤 피곤함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치지도 않으시는 힘이 넘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지혜가 풍부하시기에 그 어떤 일도 감당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고 이사야선지자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65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니이다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65:6-11) 모든 것을 창조하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지난 한 해를 인도해 오셨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감사하며 예배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그 하나님에게 원망과 불평만 한다면 우리는 낙담하여서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피곤하고 곤비한 인생이 될 것이며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자(קָוָה/카바/기다리다, 소망으로 삼다, 믿고 바라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분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한 과부가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을 때 불의한 재판장에게 낙심하지 않고 간구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때 누가는 이렇게 그 상황을 묘사합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느냐”(18:6-7), 요한계시록 7장에서도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요한계시록 7:14-17) 우리가 앙망하는 여호와는 어떤 분인가? 지친자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자에게 기력을 주시는 자이십니다. 소년이라도 지치고, 장정이라도 넘어지지만(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자들,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어려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들) 오직 우리에게 힘주시고, 기력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지치고 연약한자)는 독수리가 비상하며 오를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날아오르는 것처럼, 달리거나 걸어도 곤비하거나 피곤치 아니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지금 연약할지라도 주님을 의지할 때 새로운 삶의 기력을 얻어 살게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가운데서도 그 하나님을 소망하시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시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 속에서 늘 감사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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