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우리가 무엇인가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언제일까?
먼저는 우리의 주변에 너무 가깝게 있기 때문일것이다. 항상 내가 소유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우리는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그것이 은혜임에도 은혜인줄을 모른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너무나 가깝게 있다보니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가족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모두가 건강하고, 늘 함께하는 사람들은 실향민들의 마음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과 떨어진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한다. 늘 우리의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준비되지 못한 마음을 갖게 된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상실을 통해서 사람들이 더 큰 고통과 망연자실함을 느끼게 되는것은 아마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상실이 더 커보이게 된다. 내가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물질이 그렇고, 우리가 가진 건강이 그렇고, 우리의 삶의 주변에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이 그렇다. 그것이 있을 때에는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일 것이다. 야곱도 자신의 출생을 통해서 주어진 먼저됨의 권리, 장자의 권리를 그렇게 여긴 것은 아닐까? 그 역시도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 여겼기에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야곱이 그것을 달라고 했을 때 쉽게 그것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 여전히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둘째로는 중요도의 차이일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우리의 마음을 쏟게 되어있다. 그것에 전념한다. 그러다보면 다른 것들에게는 신경을 덜쓰고 뒤로 미루게 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본다. 돈을 버느라 가족을 잃어버리고, 한 쪽에 너무 집중하다가 다른 쪽을 잃었을 때가 그러한 경우일 것이다. 에서에게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에서는 자신의 배고품과 허기를 달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을 모면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장자의 권한을 지키는 것보다 커보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그것을 쉽게 놓을 수 있었다. 자녀에게 축복을 하고, 가정을 이끌어가고, 모든 것을 더욱 얻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 것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에겐 무엇이 소중한가? 우리의 삶의 곤란이, 인생의 문제가 하나님이 주신 것(사명)보다 더 크다면 우리는 그 사명을 소홀히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명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이다.
사명은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사명을 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믿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사명을 준다는 것은 나에게 그것을 감당할 건강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기억하고 계시며,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을 주실 때는 감당할 길도 열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나를 사랑하셔서 사명을 주시고, 일꾼삼아주셨기 때문이다. 나의 상황과 형편을 핑계삼아서 아니 그것과 맞바꾸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일로 우리에게 맡겨주실 것이며, 더 큰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주실 것이다. 주어진 것을 망각하고 소홀히 함으로 장자의 은혜를 잃고 방황하던 에서, 왕의 직분을 주셨던 하나님의 뜻을 떠나 버림받은 사울, 오늘 우리의 모습도 그러한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