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24-30
섬김의 마음을 가진 자
사실 우리는 <섬김>에 대하여 설교도 많이 했고 듣기도 했습니다.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기초 원리가 여기에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회의 중직자를 선택할 때 이 부분에 가서 시험 드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 안의 모든 직분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섬기는 직분입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셔서 직분을 맡기셨다’는 부분에서는 명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종된 자의 자세>입니다. 일을 맡겨주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겸손하게 순종하는 종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종은 내 것도 없고, 주장할 권리도 없고, 항상 감사할 것뿐인 존재입니다. "나 같은 부족한 종에게 직분을 맡기셨으니 충성하겠습니다"는 마음으로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는 주인의 마음을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하신 부분입니다. 겸손하게 섬기는 자에게는 평안의 은혜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예화) 일본의 유명한 정치가이며 교육가인 가다오카(片岡建吉)장로는 정치 문제로 감옥에 갇힌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교도관이 그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켰습니다. 아무리 감방에 갇힌 몸이지만 그 일은 참으로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성경을 보다가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일을 생각하면 죄인이 감옥에서 화장실 청소하는 일이야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 이후로 자진하여 남의 발을 씻기는 일에 헌신하기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그리고 훗날 일본의 중의원 의장을 역임하게 됩니다. 어느 날 가다오카가 다니던 교회에 한 낯선 일본군 장교가 들러 예배를 드리고 나와 보니 신발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신발을 정리하던 노인에게 호통을 쳐댔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교님의 신은 귀한 것이기에 잘 간수하느라 딴 곳에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신을 정중한 자세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그 장교는 낯익은 듯한 그 노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일본 의회 중의원 의장을 지내던 가다오카였기 때문입니다. 가다오카는 고백하기를 주님이 인간의 더러워진 발을 씻겨주신 겸손을 생각하면 자기가 교회에서 사람들의 신을 정리하는 것은 영광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은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가 되는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서 섬기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죽이시는 겸손함을 보이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계시다는 모습을 보이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8)
하나님의 정신이냐 세상의 정신이냐
본문의 제자들은 어땠습니까? 종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24절)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려고 온 힘을 쏟으시는데, 제자들은 오히려 큰 자, 섬김을 받는자가 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어리석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을 향해서 이것은 이방의 방식이요, 세상의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25절)
세상의 방식은 권세있는 자, 많이 가진 자가 인정을 받는 방식입니다. 그렇기에 지식을 쌓으려하고, 권력을 얻으려하고,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하며 살아갑니다. 이웃을 깍아내려야 자신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드려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방법이요, 정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정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은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26-27)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큰 자가 아니라 작은 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인정하십니다. 요한계시록도 우리에게 밝히 말해줍니다.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상 주시며...”(요한계시록 11:18)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시편기자도 말합니다.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치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시편 15:1-3) 결국 하나님의 나라의 삶의 방식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임을 말해줍니다. 선지자 이사야도 말합니다.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이사야 32:16) 즉 이들은 삶의 기준을 나에게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외에 높은 자가 없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세상입니까?
작아질 때 사용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작은 자, 섬기는 자,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가 작아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작은 자가 되었을 때가 비로소 가장 큰 자가 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누가복음 9:48) 하나님은 우리가 작은 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사용하십니다.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30절)
우리가 작은 자로서 주님을 섬기며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작은 자란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삶에 평안과 안전이 있다고 하십니다.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이사야 32:17-18)
예수님께서 보이신 섬김의 모습과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경외하며 사십시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겸손하고 낮아진 우리를 사용하시며 우리의 삶 속에 평안과 기쁨으로 쉼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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