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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시는 하나님

꿈지기의사랑 2010. 6. 13. 09:52

스가랴 8:18-23

 

금식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게 하심

 

   유다가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유다에 적대적이었던 당시 사마리아와 주변 민족들의 악의 적인 고소로 인하여 방해를 받습니다. 성전 재건이 중단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고, 건축이 중단된 이유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성전 재건의 중단으로 인하여 혼돈과 분열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일어나 성전을 재건할 수 있는 힘을 북돋우시기 위해서 스가랴를 통해서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신 사실은 중단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면 영적인 혼돈과 분열이 그치고 다시 영적인 생활의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본문은 부흥될 미래의 교회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보아 유다는 당시에 일년에 적어도 4번 정도 금식하는 절기를 지켰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많은 금식의 절기를 지켰던 것일까요? 먼저 4월 달에 금식했던 이유는 시드기야 왕 11년 4월 9일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느부사라단에 의해 점령되었는데, 이 고통스러웠던 날을 상기하기 위해서 제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5월 금식은 바벨론왕 느부갓네살 19년 5월 7일 예루살렘 성전이 불탄 것을 상기하기 위해서, 7월 금식은 시드기야 왕 11년 7월 유다 총독 그댤랴와 많은 유다인들이 학살 당한 것을 상기하면서, 또 10월 금식은 시드기야 왕 9년 10월 10일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시작한 날을 상기하기 위해서 제정된 금식의 절기입니다. 즉 일년 4차례의 금식 씨즌은 과거 이스라엘이 당했던 고통의 날들을 상기하기 위한 목적에서 지켜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금식할 때에 탈릿이라는 숄(보자기)를 둘러쓰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자를 외부와 차단시켜줘서 하나님께 더억 집중하도록 도와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탈릿에는 ‘찌지트라’는 술이 붙어 있었는데, 이 술은 ‘하나님은 한분이시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민수기 15:38-39)

 

   어느 곳에 있든 간에 자기 옷단에 달린 찌찌트를 보게 되며, 찌찌트를 볼 때마다 자기 자신의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계약을 기억하게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게 되며, 결국은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탈릿을 뒤집어 쓰고 기도함으로써 그들은 금식하는 동안 하나님을 바라보며, 탈릿을 쓰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금식의 기도는 본래 회개와 슬픔, 분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슬픔과 비탄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날이 기쁨과 즐거음과 희락의 절기가 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번째로 맛볼 영적인 부흥은 기쁨의 회복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임마누엘 신앙인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절망과 슬픔과 비탄에 빠져 살아야할 우리가 희망과 소망과 기쁨을 회복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기뻐하며 살아가게 된다.

 

   임마누엘의 약속은 구원의 기쁨과 회복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성도는 이 땅에서 항상 기뻐하며 천국의 백성으로서 즐거움을 맛보며 살아갑니다. 시편기자는 노래합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 30:11) 바울 역시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회복하신 기쁨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의 복음의 편지가 됩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며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현재의 교회 안에는 누군가의 말대로 십자가의 신학-금식의 모습-만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안에 주님께서 회복하신 기쁨과 감사와 찬양을 회복해야 합니다. 기쁨의 삶을 회복할 때 우리의 삶 자체가 전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올 때에 주변의 백성들과 나라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20절).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을 향해서 열려져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는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가정이 구원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 백부장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기로 결단하고 그가 믿음으로 살 때에 하나님은 그의 삶과 가정에도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에 의해서 이방인의 구원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베드로도 그러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의 구원을 보면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18절)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전도는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변해있을 때,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찰 때 이미 가능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란 바로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기쁨이 회복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기자는 말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 2:46-47)

 

하나님의 함께하심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볼 때 세상은 우리를 부러워하며 우리에게 가까이 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삶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의 모습속에서 믿음의 선진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요셉도 그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복주시는 것을 보고 보디발이 그를 자신의 집의 총괄자로 삼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하시는 것을 볼 때에 먼저는 우리의 모임에 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싶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21-22절) 우리의 삶이 변하면 세상은 자연히 구원의 백성의 자리로 들어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잘 되는 교회에 가고 싶고, 잘나가는 학교에 가고 싶고 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리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하려 하노라 하리라”(23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나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가정,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복을 받게 될 때 우리의 삶에 함께 하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약속받은 우리의 삶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을 받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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