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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통해 은혜의 보좌로

꿈지기의사랑 2010. 9. 11. 22:50

히브리서 4:12-16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입을 통해 선포되고 귀를 통해 듣지만, 단지 입과 귀의 작용만이 아닙니다. 말씀은 한 인격 전체와 대면하는 것입니다. 의사가 예리한 칼끝을 통해 환자를 해부하면 숨겨진 모든 것이 눈앞에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사의 칼끝보다 예리합니다. 의사의 칼이 가르지 못하는 부분, 마음의 숨은 생각까지도 하나님의 눈앞에 드러내어 놓습니다. 하나님이 상관하시는 만물은 다 하나님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납니다. ‘드러난다’라는 의미는 레슬링에서 목이 잡힌 상태나 제물의 목이 칼 앞에 노출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치명적 약점이 노출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우리 얼굴을 감출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은 그의 취약점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행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굽어 살피시는(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 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시 33:14-15)

 

   굽어 살핀다. 감찰한다는 말은 '자세히 보아 살피는 것'을 말하는데, 즉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일컬을 때 사용되어지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 우리는 벌거 벗기운 것처럼 모든 것을 감출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사상을 감찰하십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

 

   또 29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대상 29:17)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심장과 폐부와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예레미야 17:9-10)

 

   하나님 앞에 벌거벗기운 채로 서 있는 우리이기에, 우리의 삶이 더욱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온전해야 합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왜 우리를 감찰하시는가?

 

   우리의 모든 마음과 행위를 아시는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보시고서 적절한 때에 긍휼과 자비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화) 여름성경학교 둘째날 아이들과 함께 금강하구둑에 있는 수영장으로 물놀이를 갔습니다. 예약한 자리에 짐을 풀어놓고 아이들은 옷을 갈아입고서 물놀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을 보느라고 물놀이를 즐길 수 없었습니다.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아이들은 넘어지거나, 물속에서 허우적 거리기도 합니다. 또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느라고 여념이 없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왜 교사들은 아이들을 그렇게 살피보아야 할까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추워서 입술이 파래지거나 떨면 물 밖으로 나와서 쉬게 하거나 음식을 주기도 합니다. 또 어린 아이들이 넘어지면 얼른 달려가서 일으켜 세워줘야 합니다. 먹을 것도 챙겨줘야 합니다. 사고도 예방해야 합니다. 이처럼 교사들이 아이들을 살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16장에 나오는 하갈의 사건은 이런 면에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갈은 여주인 사래를 멸시한 죄로 쫓겨나 광야로 도망합니다. 이때 여호와께서는 그를 돌아보시고 그 고통을 들어주시고 아들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여 주십니다.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창세기 16:10-11)

 

   하나님은 비록 선민이 아닌 하갈까지도 감찰하셔서 그를 도우셨습니다. 하물며 택함 받고 구원 얻은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그 감찰하심 속에서 긍휼을 베푸시며 자비로 감싸주실지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갈은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우리를 감찰하십니다. 오늘도 고난 중에 있는 우리의 삶 속에 함께 하시며 우리의 삶을 살피시고,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 있어야 할 것으로 채우시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능력의 원천(4:14~16)

 

   자신의 약함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반면 자신이 약하다고 여기고 강함의 원천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불행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함과 강함을 모두 갖추기 원하십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약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담대함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 담대함은 자비로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주어집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이 은혜로우신 대제사장을 힘입을 때 우리는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을 의지해 긍휼과 도우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능력의 원천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갈라지 상황을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대신 고난 받게 하시고, 우리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오늘도 죄인으로서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은혜의 원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14-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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