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지기의생각나누기

꿈지기의 생각을 함께 나누어 보아요

목회와 일상의 대화

수요기도회설교

사랑의 간구

꿈지기의사랑 2026. 3. 29. 00:34

빌레몬서 1:8-14(20260401)

 

들어가는 말

 

   세상은 흔히 힘과 권위로 사람을 움직이려 합니다. 명령하고 통제하면 겉으로는 따르는 것 같지만, 마음까지 움직이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위해 그의 주인 '빌레몬'에게 편지를 씁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는, 당시 사회 통념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파격적인 부탁을 빌레몬에게 건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명령할 권위가 충분히 있었지만, 그 권위를 내려놓고 '사랑의 간구'를 선택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명령이 아니라 사랑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4-7절을 통해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레몬, 너는 이미 성도들을 평안하게 하는 사랑의 사람이지 않니? 그 아름다운 소문이 내게까지 들려왔단다. 그렇다면 이제 그 넓은 사랑의 그릇에 '오네시모'라는 한 사람만 더 담아줄 수 없겠니?" 바울은 빌레몬의 신앙적 정체성을 먼저 확인시켜 줌으로써, 그가 '사도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의 본성'에 따라 자발적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마음의 길을 닦아 놓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랑의 간구' 속에 담긴 바울의 지혜를 살펴보며, 우리 역시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힘이 권위의 명령이 아닌, 상대를 인정하는 사랑의 격려에서 나옴을 깨닫고자 합니다.

 

명령할 권리를 포기하는 사랑 (8-9)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라고 말합니다. 빌레몬은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회심한 사람이었죠. 당시 영적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스승의 가르침이나 권면은 사실상 '명령'에 가까운 무게를 가졌습니다. 바울은 신앙적 지도자로서 빌레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지시할 공적인 자격이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마땅한 일'이란 헬라어로 '아네콘(anēkon)'인데, 이는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뜻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용서와 사랑입니다. 따라서 도망친 노예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되었다면 그를 용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선택'이 아닌 '당연한 도리'였습니다. 바울은 "네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 의무다"라고 정답을 정해놓고 강요할 수도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내가 너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100% 있지만, 나는 그 권리를 쓰지 않겠다. 대신 너의 사랑에 호소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빌레몬을 단순한 '양 떼'가 아니라, 격 높은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성숙한 동역자'로 대우해준 최고의 예우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도리어 자신을 "나이 많은 나 바울", "갇힌 자 된 자"라고 소개하며 낮아집니다. 이는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선을 행하도록 이끄는 고도의 목회적 배려입니다. 사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는 것입니다. 상대의 인격을 존중할 때, 그 사랑은 비로소 상대의 마음 문을 엽니다.

 

'무익''유익'으로 바꾸는 복음의 능력 (10-11)

 

   바울은 옥중에서 만난 노예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 부릅니다. 전에는 빌레몬에게 경제적 손해를 입히고 도망친 '무익한' 자였으나, 복음을 만난 후 그는 바울과 빌레몬 모두에게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었습니다. 오네시모가 도망쳤다는 것은 주인인 빌레몬에게 노동력의 손실을 입혔음을 뜻합니다. 더욱이 성경학자들은 오네시모가 도망칠 때 빌레몬의 재물을 훔쳤을 가능성(18절의 '빚진 것' 언급)이 크다고 봅니다. 주인에게 경제적 피해를 주고 도망간 노예는 말 그대로 아무런 쓸모가 없는, 오히려 해를 끼친 '무익한 존재'였습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은 헬라어로 '유익한(Useful)'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절묘한 언어유희를 사용합니다. "그의 이름은 '유익함'이지만, 실제로는 너에게 '무익(Unuseful)'한 행동을 했다"는 점을 짚어낸 것입니다. 이름값을 못 하던 인생이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오네시모는 죄의 종노릇하며 자기 욕심을 따라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이웃(주인) 앞에서도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영적 무능력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복음이 없는 인생의 본질이 결국 타인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무익함'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 하며 오네시모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랬던 오네시모가 감옥이라는 절망적인 환경에서 복음으로 태어난 소중한 생명임을 강조함으로써, 오네시모가 바울에게 얼마나 각별한 존재인지를 드러냅니다. "내가 이 고통스러운 감옥 생활을 견디며 얻은 유일한 열매가 바로 오네시모다"라는 말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함부로 처벌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영적 보호막이 됩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무익'했던 인생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유익'한 존재로 거듭납니다. 전에는 도둑놈이자 도망자였으나, 이제는 바울의 사역을 돕고 빌레몬의 영적 형제가 될 만큼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과거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변화된 현재와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자발적인 순종을 기다리는 배려 (12-14)

 

   바울은 오네시모를 곁에 두고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빌레몬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빌레몬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로봇처럼 억지로 순종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사랑에 감격하여 스스로 드리는 '자발적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선행을 권할 때, 그가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나가는 말 : 사랑이 이깁니다

 

   바울의 간구는 결국 빌레몬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는 훗날 교회의 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명령은 굴복을 낳지만, 사랑은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킵니다. 오늘 우리도 내 권리를 앞세우기보다 사랑으로 간구하며, 상대방의 자발적인 순종을 기다려주는 넉넉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억지가 아닌 자원하는 심령으로 행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수요기도회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할 때 기억나는 사람  (0) 2026.03.21
기도로 하나 되는 공동체  (0) 2026.03.18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려면  (0) 2026.03.04
상속자가 되게 하시려고  (0) 2026.02.22
은혜로 새롭게 된 삶  (0) 202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