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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꿈지기의사랑 2025. 4. 20. 01:26

마태복음 23:1-12(참고 전도서 9:11-18; 고린도후서 11:19-30/20250323)

 

들어가는 말

 

   요즘에 동양철학에 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전문서적을 읽는 것은 아니고 그것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양의 사상가들이 말하는 앎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리해놓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왜 그들이 앎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는지는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나? 무턱대고 사는게 아니라 사람을 알고 앎이 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일까를 고민한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말씀에 귀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앎에 대해서 사람을 아는 것, 또 그 앎을 삶으로 살아내면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고 했다면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신 것일까? 결국 예수님 역시도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 사람답게 사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몸소 보여 주신 것은 아니었을까요? 요즘 좌와 우로 나뉘에서 사상논쟁처럼 번저버린 대통령의 탄핵을 둔 싸움 역시도 사람답게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함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행위를 본받지 말라 : 보여주기 식의 삶(외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시면서 그들에게 요구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그들을 향해서 말씀하신 것은 악한 삶에서 떠날 것을 촉구합니다. 악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악한 삶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악한 삶을 버리고 옳은 것을 배워가며 살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악에게 잠식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늘 악을 경계하며 신앙의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것에는 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서 인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초심이란 처음 가졌던 마음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바울이 말한 것도 그와 같습니다. 바울은 그가 가진 어떤 배경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일꾼으로 부름받았다는 소명의 사실이 그를 그리스도의 일꾼 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 사역자로서 수없이 많은 환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고난의 경험은 주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감내하기 힘든 무게로 눌림을 당할 때에도 불평이나 원망의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고후 6:4)

   바울의 자신의 삶에 찾아온 고난으로부터 도피하려하지 않았습니다. 매를 맞기도 하고, 환경의 어려움에 처하기도 합니다. 또 그는 노동을 해야 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고초 속에서 복음에 대한 열정을 불태웁니다. 잠도 포기한채, 배고품도 잊은채 그는 춥고 헐벗는 모습도 잊어버린 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참고 인내하는 신앙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내적, 외적인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인내하며 복음전파에 전념하였습니다. 그에게 고초는 더이상 고초가 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온 삶을 통해서 교회를 위해서 걱정하고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복음 사역에 장애가 되는 것들은 아무리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일지라도 포기하였습니다. 그의 관심은 온통 교회와 성도들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가 당하는 어떤 핍박이나 어려움으로 인한 고통보다도 그는 교회에 대한 염려로 고난 당했습니다. 누가 알아 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역을 위해서 온 삶을 드린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늘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함을 늘 명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행해야 할 삶

 

   그러한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을 도와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고아를 신원하라고 말합니다. 신원이라는 말은 변론, 변호, 판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올바르게 자신의 권한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과부를 두둔해 주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사정을 돌아보면서 그들을 위해서 일해줄 것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이웃을 섬기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로서 우리가 행해야 할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책망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아는 것과 삶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인 율법에 대해서 통달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잘 알았지만 그들의 삶은 그들이 아는 것과 전혀 다른 사람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3-7)

그들은 이론적으로 많이 아는 것을 자랑했고 사람들을 그 앎을 통해서 책망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행하라고 하신 섬김에 대해서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해야 할 삶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선생의 자리에 있다면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접받는 자리라 여기며,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대접받는 일에는 열심을 냈지만 정작 그들이 보여야 할 삶의 모범이 없었기에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순종하는 삶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을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죄가 주홍과 같을 지라도 우리를 용서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십니다. 그러면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삶을 살 것입니다. 기꺼이 하려는 헌신의 마음으로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좋은 것을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욕망과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순종함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이사야 1:19)

   전도서의 말씀처럼 지혜를 가졌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혜를 통해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순종하는 삶이 동반되어야 함을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전도서 9:11) 우리의 삶의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머리로만 아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우리의 온 삶이 그리스도를 닮은 작은 그리스도임을 보여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가는 말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는 것이며, 예수님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길은 누군가에게 대접받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주님과 함께 걷는 그 길, 주님이 섬긴 작은자들 이웃들과 함께하는 자리임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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