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13-18( 20241127)
들어가는 말
바울의 고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였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살믈 살려면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하여야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거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던 믿음의 형제들이 슬픔을 당했을 때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를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자는 자’라는 말의 희망
죽음은 우리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가족이나 동료를 잃었을 때의 슬픔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데살로니가 교회는 죽은 자들로 인한 슬픔과 상실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에 대해 하나님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하십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신음하고 죽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죽음의 원인이 죄라 말합니다. 그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죽음은 심판을 동반합니다.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기에 소망이 사라진 것을 알기에 슬픔과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질만한 근거가 사라지고 영원한 이별이 지속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이처럼 삶을 뒤 흔듭니다. 소망이 사라지면 절망과 흑암의 구덩이에 빠지기 쉽습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절망입니다. 그런 인생들을 향해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세의 소망인 구원과 영생에 있습니다. 성도의 구원과 영생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으로 입증되는 바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믿고 고백하는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과 영생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육체의 죽음은 절망이요 끝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복음을 처음 받아들인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과 영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예수님 재림 이전에 죽는 것에 대해 염려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육신이 죽었어도 소멸하는 것이 아니기에 죽은 자를 ‘자는 자’(13절)로 비유해 설명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몸을 입고 다시 살 것인데, 이를 보증하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14절).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을 보고 절망적 슬픔에 빠지는 것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잠시 보지 못해 안타까워할 뿐 소망 없는 비탄에 잠겨서는 안 됩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부활 영광의 시작입니다.
예수의 강림 때에 죽은 자가 일어난다
예수님의 재림과 부활은 성도에게 소망이 됩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날 사건의 순서를 설명합니다.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릴 때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십니다. 그때 먼저 천사들을 통해 온 세상 모든 곳에서 택하신 사람들을 모으십니다(“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 24:31). 이는 주님께 소환된 모든 자가 사방에서 나아오는 것으로(14절),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자들이 주님처럼 새로운 몸으로 부활함을 가리킵니다(16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 15:52). 바울은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을 잠자는 자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품 안에 거하므로 세상에서 소망했던 모든 것들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자는 자들은 그 모습이 영광을 입게 될 것이고 더욱 좋은 곳에서 풍요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의 재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제로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재림을 신앙하는 성도는 예수께서 다시 강림하시되 새 세계의 모든 권능으로 오심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16절)
부활의 신앙으로 서로 위로하라
이어서 살아 있는 자들도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영접합니다. 이렇듯 주님의 재림은 죽은 자나 산 자 모두에게 소망의 날입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입니다(롬 14:8).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 진대”그렇습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9-20) 그 사실을 믿는 우리에게 역시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14절 下)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그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믿음을 통해서 부활의 생명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선포하십니다. 죽은 자로 말미암아 슬퍼하기를 원치 않는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영생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이제는 부활 신앙으로 죽음 앞에서 더욱 담대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가는 말
우리의 삶에 죽음은 언제나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슬퍼하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또한 상실을 경험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절망하는 당시의 성도들에게 우리에게는 먼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그분 안에서 믿음으로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살아야 함을 말해줍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주 안에서 함께 하는 때가 찾아올 텐데 그 때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며,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고 우리의 인생가운데 함께하실 부활의 주님을 의지하고 부활의 신앙으로 성실히 살아가며 서로 위로하는 가정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수요기도회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0) | 2024.12.07 |
---|---|
함께 살기 위해 죽은 주님 (0) | 2024.11.30 |
하나님을 기쁘시게 (0) | 2024.11.15 |
너희가 굳게 선즉 우리가 살리라 (0) | 2024.11.10 |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는 에너지 (0) | 2024.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