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15-23(20240821)
들어가는 말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를 통해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건지시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겨 주신 것을 찬양합니다. 바울은 비록 로마에서 가택 연금된 상태로 살고 있지만 현실에 갇힌 자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바라보며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자녀들이 바르게 신앙의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감옥과 같은 고난의 삶이라도 기도하며,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통해 영적으로 더욱 단단해져 가지고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자신을 복음의 일꾼으로 소개하는 바울의 편지를 묵상하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 보다 먼저 나신 이 예수
바울은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피로 값을 치르시고 용서해 주신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소개합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형상은 ‘에이콘(εἰκών)’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쩨렘”이라는 단어입니다. 이미지나 형상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사물에서 갈라진 것, 떨어져 나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파괴되어야 하는 ‘우상’, ‘형상’을 의미하기도 하고, ‘신과 연결된 존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 창조하신 하나님을 닮아 인간을 사랑해 자신의 생명을 다해 사랑하신 예수님의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만물보다 뛰어나신 분이시며 하나님과 동격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창조에 함께 하셨습니다. (17절)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다
바울은 교회를 인간의 몸에 비유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 역할을 하십니다. 몸의 모든 부분이 머리의 통제를 받듯이, 교회의 모든 방향은 그리스도를 통해 조정되고 움직여야 합니다. 머리는 심장과 마찬가지로 육체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생명력이 깃드는 자리이며, 영혼과 그 힘이 머무는 곳입니다. 머리는 지혜, 마음, 다스림, 지배를 뜻하는 말입니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을 배제하면 창조는 와해 되고 그 목적을 상실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의 근원이요 주인이며 중심이고, 모든 피조물의 자리는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정해집니다. ‘머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켑할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로쉬’로 그 뜻은 ‘처음’, ‘머리’, ‘족장’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거짓 신으로 세상의 머리가 되어 사람들로 육신의 열매를 맺게 만드는 뱀(사단)의 머리(히브리어: 로쉬)를 ‘여자의 후손’이 상하게 할 것이라는 창세기의 예언은 사단의 권세를 깨뜨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며,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만이 교회를 충만케 하시는 분임을 상기시킨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에베소서 1:21, 22)
몸의 모든 부분이 머리의 통제를 받듯이, 교회의 모든 방향을 그리스도를 통해 조정되어야 합니다.
화목케 하신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화목케 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영적으로 소외된 삶을 살았던 우리였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2-13) 주님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로서 세상 끝날까지 성도들과 함께 하시며, 구속의 역사를 진행하시고 계십니다. 성도들은 복음의 소망 안에서 믿음의 터를 굳건히 세우고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순종하여 주님의 구속의 역사의 완성을 도구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나가는 말
바울은 영적인 눈으로 존귀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며, 그리스로 인해 유지됨을 깨달았습니다. 온 삶을 통해 사랑을 보여 주신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그 사랑을 함께 배우고, 누리고, 나눈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릇된 사상으로 갈라지고, 무너져가는 길을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온 삶을 통해 이루어주신 사랑과 화목을 기억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그 복음이 우리에게 왔음을 증거하는 증거자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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