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16-18 (20231108)
들어가는 말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더 이상 육체의 것을 자랑으로 삼으려던 과거의 삶을 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 우리의 가치관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삶으로 오직 십자가의 사랑을 자랑하는 삶이 되자는 것이 지난 주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갈라디아서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결론부분인 16절 이하의 말씀을 중심으로 흔적을 가진 신앙인이었던 바울과 우리도 흔적을 가진 신앙으로 살아갈 단초를 함께 찾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평강과 긍휼을 비는 바울
바울은 갈라디아에 보낸 편지의 마지막 인사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평강과 긍휼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란 육적인 할례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아 창조된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참 이스라엘이며(‘’로마서 9:6), 참 할례를 받은 사람(‘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빌립보서 3:3)인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갈 3:7) 여기서 ‘규례를 행하는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자들임을 바울은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규례란 지난 주에 함께 나누었던 복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라디아서 6:14)의 말씀처럼 육체를 자랑하는 삶이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삶, 세상에 대해서는 십자가에 못박힌 삶을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하심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된 성도들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의 흔적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부정하고 복음을 비하하여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울에게는 예수의 흔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짓교사들과 율법주의자들이 몸에 가진 육신적인 흔적이 할례라면,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로 인한 상처를 가졌노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태장을 맞고, 돌에 맞고, 로마인의 매를 맞으면서 생긴 흔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며 얻은 그의 믿음의 행적속에서 얻어진 그리스도의 흔적들입니다. 유대인들의 할례의 흔적에 대조적인 표현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받은 상처를 자랑스럽게 여겼고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흔적은 예수의 고난의 흔적으로 상금이 약속되어 있는 자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흔적들이 있습니까? 우리는 때로 예수를 믿으면서 오는 고난과 역경들을 그저 힘든 것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흔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바울의 백경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바울의 삶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그 흔적들을 통해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한 것처럼 오늘 우리도 복음을 전파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0)
마지막 인사 :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는 삶을 비는 바울
바울은 편지의 마지막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비는 기도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죄인들을 주권적으로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인간이 성령의 뜻을 좇아 경건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은혜입니다. 이 말은 ‘푸짐한 선물’, ‘거저주어지는 선물’이라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은혜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 복음의 생명을 소유하는 은혜, 죄의 사함을 얻고 새로운 삶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장면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도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와 믿음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3:9)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곳이 심령임을 밝힙니다. 이것은 육체를 중요시하고 의식적인 종교 생활을 주장하던 당시의 거짓교사들의 주장에 이끌려 가는 삶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즉 생각의 중심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여서 복음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가는 말
바울은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러서 서로에게 화평과 긍휼을 구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거짓교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육신 적인 것, 율법과 그 율법의 핵심을 이루는 육체의 할례를 가진 것을 자랑하는 삶을 살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흔적, 즉 복음을 통해 구원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은혜가 충만하여져서 육적인 일이 아닌 십자가의 길, 복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은 은혜를 통해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흔적,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살아갈 때 가능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고예화) 사랑의 흔적(출처: 국민일보 겨자씨/ 권오성목사(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 )
수십년 전 만주에서 20개월이 막 지난 아이 3명이 천연두를 앓았습니다. 의료진이 없는 가운데 두 아이는 안타깝게 죽고 말았습니다. 나머지 한 여자아이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얼굴에는 천연두 흉터가 남아 늘 놀림감이 됐습니다. 여자 아이가 '이 얼굴로 어떻게 살아가나'하며 절망하고, 죽고 싶을 때마다 그녀는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얘야, 이 마마자국은 하나님께서 너를 살려주셨다는 증거이고, 축복의 표시란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녀의 마음속에는 확신이 뿌리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인이시며, 인생길의 인도자이심을..., 그녀는 뉴욕의 한인교회의 목회자의 사모로서 헌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모만 생각했다면 그녀는 평생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임하면서 마마자국은 사랑의 흔적과 은혜의 자국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의 인생은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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