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6-10(20231025)
들어가는 말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실수할 수 있는 약점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시험을 받지 않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살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서로의 시련과 고통을 함께 짊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의 온전한 삶이 됩니다. 타인의 아픔을 함께 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입니다. 본문에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목회자와 성도, 성도와 하나님, 성도와 이웃 간에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함께할 사이 : 목회자와 성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말합니다. 즉 목회자와 성도 사이는 어떤 사이가 되어야 할까요? 목회자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바르게 자라고 신앙 가운데 굳게 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으로 그들을 양육하고 그들을 돌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성도는 그들의 삶을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서로에게 있어서 좋은 것, 귀한 것을 함께합니다. 즉 나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함께하라'는 헬라어 '코이노네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공동으로 가지다, 같은 피와 살을 나누다, 연합하다, 참여하다'의 뜻으로 주로 '누가 가진 것을 다른 이와 함께 나누다'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즉 가르치는 자(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써야 합니다. 또한 그 일을 함에 있어 홀로 할 수 없기에 '좋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역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즉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목회자들과 나누고, 동참하는 자가 되라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함께 협력한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즉 목회자와 성도는 서로 물어 뜯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하는 관계, 협력하고, 나누고, 서로의 삶에 동참해 주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사람들이 성만찬의 빵을 나누어 먹음에 의해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로서 하나임을 인식하는 행위를 뜻하는 ‘코뮨(commune, 성찬을 받다)’은 나눔을 통한 연합, 즉 공유에 따른 공동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코이노니아는 무언가를 서로 주고, 그것을 받음으로서 하나가 되는 상호공동의 관계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눈 관계,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눈 형제로서 서로를 환대하고 돌보는 관계로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특징 :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사람이 성도라고 지난 주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업신여겨서(μυκτηρίζεται / 뮈크테리제타이)는 안된다 말합니다. 무크테리제타이는 ‘코를 치켜 올리다’, ‘경멸하는 마음으로 대하다’, ‘우롱하다’ 등의 뜻입니다. 말로 비웃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육신대로 살아가며 겉으로는 믿음을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거력하며 저체적인 삶으로 하나님을 경멸함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당시 갈라디아 교회의 현실입니다. 이런 교회를 향해 바울은 ‘심는데로 거두게 될 것’(7절)이라 경고합니다.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성령을 따르는 믿음의 길이 아니라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살아가려는 그들을 향해서 성령의 길을 따르지 않기에 육체의 욕심을 이루는 삶, 하나님의 뜻과는 먼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8절) 교훈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고 물질 사용에 있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길을 걷는 자들이 얻게 될 은혜는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바울의 말처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이 되셔서 영생을 거두는 귀한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해야 할 관계 : 성도와 성도사이
바울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위하여 심는 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하는 것이라 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구원받은 성도로서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이를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바울은 그러면서도 기회가 있는대로 믿음의 가족들에게 더욱 이러한 일을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형제들입니다. 그렇기에 서로 육신의 형제 이상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간의 사랑이 교회의 특징입니다. 단순히 입술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자신의 물질을 가난한 형제들을 위해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실천이 필요 합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사도행전 2:44-45)
사랑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보며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간의 사랑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보여 줍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들로서 각자가 주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귀한 존재임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나가는 말
우리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함께 나눈 믿음의 형제로서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나누고, 성도들은 이러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을 도움으로서 사랑하는 공동체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물질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성도간에 사랑의 교제를 이루고 주의 피로 값주고 사신 귀한 존재로서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말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의 어려움을 돌아보고 물질과 맏음으로 선을 행하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야 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로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라디아서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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