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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만찬 VS 자기의 만찬

꿈지기의사랑 2022. 1. 22. 20:32

고린도전서 11:17-22

 

들어가는 말

 

   교회 안에서 어떤 모임을 가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그것은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많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예배를 비롯해서 당회, 신도회, 학생회, 성가대 등 다양한 모임들이 있습니다. 성경공부와 같은 모임도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이러한 모임들을 갖는 이유는 조금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함께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며, 교회의 유익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먹는데서 인심난다'는 우리의 속담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업가들이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식사 자리를 갖는다. 밥만 잘 먹어도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에서 가졌던 모임중에서 바울은 특별히 식사모임, 즉 성만찬의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행해지던 성 만찬의 문제를 지적하며 교정해 주는 사도 바울의 권면내용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유익이 되지 못하고 해로운 모임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의 모임은 유익이 되기 위한 모임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모든 일에 바울 사도를 기억하고 바울 사도가 전해준 전통을 지키는 것을 칭찬했던 바울 사도는 지금부터 말하는 일에 대해서는 칭찬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가 예배하고 성찬을 할 때 오히려 유익이 아니라 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애찬식(성찬)과 같은 식사 모임등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임이 분쟁이 있는 모임이 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경제적인 차이로 인하여 분쟁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임은 서로 연합하고 하나되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애찬(성찬)의 모임은 서로 교제를 나누는 자리인데, 자신들의 부와 지위를 자랑하는 모습으로 인해서 분열을 일으키고 분쟁을 하는 모임이라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임이 될 수 없습니다. 17절과 20절에서 바울은 각각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모임(만찬)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17절),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 말을 종합해 본다면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이미 만찬모임으로 인한 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모습으로 먹는 그들의 식사는 더이상 주의 만찬일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정적인 모임에 대해서 일침을 가하는 바울의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의 만찬 VS 자기의 만찬

 

 예화) 미국 시카고대학교 부스비즈니스스쿨 아엘렛 피시바흐 교수 연구진은 간단한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연구진은 서로 초면인 실험 참가자들을 실험실에 모은 후 둘씩 짝을 짓게 했습니다. 그 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칩과 살사 소스를 제공했습니다. 이때 절반에게는 한 그릇에 담아 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개인적으로 먹을 수 있도록 1인 접시에 제공했습니다. 이후 실험 참가자들은 팀별로 가상의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이 협상에서 한 사람은 경영진 역할을, 다른 한 사람은 노조 대표 역할을 맡았습니다. 협상의 목표는 협상 22회 안에 임금을 결정하는 것으로 했고, 3회차에 파업이 일어난다고 가정했습니다. 그 결과, 다과가 한 그릇에 나왔던 집단은 1인 접시에 제공받았던 집단에 비해 파업 일수가 적었습니다. 한 그릇 집단은 평균 파업 일수가 9일이었는데, 이는 1인 접시 집단에 비해 4일이나 더 적은 수치였다는 것입니다. 피쉬바흐 교수는 "기본적으로, 혼자 먹는 모든 식사는 다른 사람과 이어질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면서 "요리를 공유하는 방식의 모든 식사는 사회적 유대감을 만들어 주는 기회를 온전히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피시바흐의 말에 따르면 식사란 함께하는 이들에게 유대감을 주는 것이어서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는데 유익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의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귀한 기회를 자기의 만찬 행함으로 인해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는 말을 통해서 예수의 만찬에 함축된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만찬의 의미는 죄와 사망으로 죽을 우리를 위해서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며 한 형제 자매인 것을 확인 하고 함께 연합하고, 교재하는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분파주의로 인해서 그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자기들 부류끼리만 먹고 마시는 자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성도 간에 서로 연합하지 못하고, 서로의 음식과 삶을 나누지 못하는 모임은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임입니다. 빈부와 남녀 노소, 귀천을 막론하고 주의 사랑을 나누는 자리가 만찬(애찬)의 자리가 되어야 함에도 그들은 그 본래의 본질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그 식사의 자리가 가난한 자들의 마음에 멍이들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자기만찬'의 모임은 주님의 사랑을 망각한 모임이기에 부당합니다.

 

소외가 있는 모임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을 보면 부한 자도 있었지만 가난한 자들이 더 많았고, 자유인도 있었지만 노예들이 더 많았습니다. 부자들은 부요한 생활을 했고 자연이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준비해 올 때도 많은 음식을 준비해 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음식을 가지고 올 수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음식을 준비해온 부자 교인들은, 일과를 마치고 늦게 만찬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성도들을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먼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배부르고 취했습니다. 그러나 일에 지쳐서 늦게 도착한 가난한 성도들은 시장하고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정신이 변질되어 극심한 빈부의 격차가 생기게 되었고, 애찬의 자리가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결국 성도 간의 화합과 교제를 목적으로 세워진 좋은 풍습이 오히려 성도 간의 화합과 결속을 파괴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가는 말

 

고린도의 만찬의 모임은 나눔이 사라지고 자신의 배만을 불리려는 먹고 마심의 자리, 세속적인 파티와 같은 자리로 변질되었습니다. 이들의 모습속에는 형제의 필요를 돌보려는 정신이 없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교회를 업신 여기는 행위일뿐입니다. 낮은자 연약한 자, 가난한 자들을 용납하신 주님의 모습을 망각한 자들의 모습은 교회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일 뿐입니다. 교회는 주안에서 하나입니다. 신분도, 계급도, 경제적인 것도, 학력도, 신앙의 경력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구원 받은 한 가족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어떠한 기준으로도 서로를 차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임 가운데 소외된 자들이 없도록, 차별없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살아있는 모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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