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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설교

사랑의 눈 심판의 눈

꿈지기의사랑 2012. 8. 26. 00:28

요한복음 8:2-11

 

시선은 시대에 따라 변하므로, 시각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주요한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시선은 타자와의 관계이고 나와 세계를 맺어주는 기본적인 매체이다.

따라서 시선은 인간관계의 기본인 권력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박정자/시선은 권력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바라봄을 당함으로 인해서 서로에게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감시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비판하기도 하는 모든 행위들이 바라봄, 즉 눈의 행동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며 관계를 맺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표현하기도 하는 이러한 눈에 대한 이야기를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의 작용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연결되어진 작용입니다. 또한 누군가를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뇌(머리)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요한복음 8장의 음행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사람을 바라보는 예수님과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 사이의 시선(관점)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귀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  사랑

 

우리는 지금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를 대면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다른 시선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율법학자들(서기관)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사람들 가운데 세워놓고 예수님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으니 어떻게 해야할지를 묻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들이미는 것은 법이었습니다. 결국 서기관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상징하는 것은 율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며, 그 율법은 사람들을 심판하고 판단하는 눈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십시오. 이들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구실을 찾으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이들은 여인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고 예수님을 고발하고 사람을 심판하고 판단하는 눈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여인이 죄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여인은 분명히 죄를 범했고 잘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이들은 사람을 대하고 평가할 때 심판과 판단의 눈, 율법의 틀 안에서만 바라보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긍휼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바라볼 때 긍휼의 눈이 없다면 서기관과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사람을 평가하고 심판하는 데만 집중하다-“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느나이까”(5)-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심판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시고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말대신에 몸을 굽히시고 땅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성경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들을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께 자꾸 여인을 돌로 쳐야할지를 다그쳐 묻는 그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누군가는 큰 죄와 작은 죄를 나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질문에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그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그 여인만이남았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심판과 판단의 눈이 아니라 그 여인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베푸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눈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이 찔린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예수님과 여인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정죄하기 보다는 그 여인 스스로가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10-11)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죄를 묵인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녀로 하여금 다시는 그 죄를 짓지말고 빛된 삶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하기보다는 그가 돌이켜서 죄짓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은 더욱더 중요합니다. 로마서 8 1절과 2절의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믿음의 사람들로서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사랑하고 감싸주고, 그리고 돌이켜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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