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30-31
목적
삶을 살아가고 어떤 글을 쓰고 행동을 하는데는 목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의 각장, 각 절에도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모습에서 독특한 것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슛이나 우리 편을 향한 정확한 패스를 위해서 사전에 어떤 동작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훼이크(속임동작)아라고 합니다. 자신의 목적, 즉 슛이나 패스를 위해서 행해지는 행동들입니다.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봄들녘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파종을 하기 전에 하는 일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파종을 하기전에 모종을 만들거나 모판을 만들어서 파종을 준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이 쓰여진 목적은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본래의 목적을 위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쓰여진 거라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에는 기적과 치유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초대교회의 고백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있는 목적이 바로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요한복음 저자는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31절)
그들은 끊임없이 주님이 어떤 분이라고 하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입니다. 멀리 갈것도 없이 20장24절이하의 내용에도 부활하신 주님이 도마와 제자들에게 나타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다락방에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마침 도마는 없었습니다. 도마가 돌아왔을 때 그를 향해 주님이 부활한 소식을 전했지만 그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며칠후 제자들과 도마가 함께 있을 때에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손과 발의 상처를 만저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서라도 확인해 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 때에 도마가 부활하신 자신의 스승임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28절)
그렇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말해주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엇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오신 분이신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이 본문의 분명한 목적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한 사건과 고백을 통해서 후대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이심
요한은 본문을 기록한 목적을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는 우리에게 오신 분이 누구신가입니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첫 번째 목적은 바로 예수에 관한 것입니다. 설교중에 쓰는 예화들도 바로 그러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입니다.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화해시키시고 이 땅을 다스릴 왕으로 오신 분 아니 그들이 그렇게도 염원하던 것처럼 그들을 구원할 분으로 오신 분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가 우리의 소망이요, 희망이며, 구원자임을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책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구주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다의 고백에서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한복음 11:27)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요한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그리스도 즉 구원을 위해서 오신 분임을 분명히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이것은 다른 이유를 위해서 우리를 향해서 쓰여졌습니다. 이 요한복음의 초점은 31절 하반절을 위한 것입니다.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요, 또 다른 하나는 그를 믿음으로 그 이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 1:12)
우리가 논에 이삭거름을 주는 것은 벼가 잘자라게 하는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라 그 후에 잇을 추수 때의 많은 결실을 통한 기쁨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즉 많은 소출로 인한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바로 그 이삭거름과 같은 역할을 우리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믿음으로 그분을 통해서 주시는 생명의 기쁨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분, 또한 우리를 위해서 부활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복음을 요한이 우리에게 들려준 것처럼 우리의 이웃을 향해 이러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사도행전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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