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9
아버지이신 하나님
우리는 신앙에 대한 고백을 합니다. 예배를 드리며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그렇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에게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 독생자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들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칭의라고 부릅니다. 요한은 이러한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부자의 관계입니다. 아주 친밀한 관계입니다. 아버지라는 말에는 여러가지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우리가 육신의 아버지를 향해서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측 육신의 삶의 출발점이 그분으로 부터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됨을 말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의 시작이 하나님으로부터이기에 우리는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하나님, 아니 어떤 아버지 이실까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의 특징중 하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버지가 무슨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행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향해서 그러한 아버지이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 독생자를 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화)가시고기의 부성애-지구상에 사는 생물 중에서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가장 지극하다는 가시고기 한쌍의 가시고기는 바다에서 살다가 해마다 이른 봄이면 산란을 위해 하천으로 올라 온다
산란 준비는 수컷이 하는데, 수컷은 혼자서 열심히 굴을 팝니다...암컷이 낳을 자기들의 알 둥지를 암컷은 수컷이 둥지를 만드는 동안 암컷 주위에서 둥지가 완성되기를 기다린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열심히 굴을 파는 수컷 가시고기 드디어 둥지가 완성되면 암컷은 그 굴속에 알을 낳습니다. 암컷은 알을 낳으면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나 버립니다. 수컷은 그 때부터 알을 지키기가 시작합니다. 알을 먹기 위해 모여드는 수많은 침입자들을 물리치고 알들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 앞 지느러미로 끊임없이 부채질을 해서 맑은 물을 굴속으로 넣어 줍니다. 알들이 부화를 해서 새끼가 나오면 아비 가시고기는 더 바빠집니다.
적이 새끼들을 노리고 접근하면, 용감하게 싸워서 물리치고 말썽 꾸러기 새끼가 둥지에서 나오면 이를 물어다 다시 굴에 집어 넣고 어린 자식들이 굴속에서 나왔다가 적에게 잡아 먹히지 않게 보호를 합니다.
자기가 감당 할 수 없는 강한 적이 나타나면 가시고기는 새끼들을 자기 입속이나 아가미속에 불러들이곤 재빨리 몸을 피하기도 하고 애비 가시고기는 잠도 자지 않고 음식을 먹지도 않고, 정성들여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랄때까지 보호를 해 줍니다. 마지막 새끼까지 안전하게 떠나 보낸 애비 가시고기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마침내 그 자리에서 삶의 최후를 맞이 합니다. 둥지 짓기부터 새끼들을 모두 떠나보내기까지 약 15일간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오직 새끼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수컷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둥이는 다 헐었고 화려했던 몸 색깔은 볼품없이 변하고 그토록 열정적으로 새끼들을 지키던 둥지 앞에서 마지막 숨을 거둡니다. 아비가 죽으면, 죽은 아비 주위로 새끼들이 모여듭니다. 새끼들은 죽은 아비의 살을 파먹고, 그 힘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게 이렇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한일서 4:9)
원수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위의 가시고기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사랑을 보여준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십니다.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기만 하면 언제든지 주기를 원하십니다. 주시되 후히 주시고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도, 구원도, 영원한 생명도, 하나님이 나라도 모두다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구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7)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것, 필요할 것들로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마태는 우리 인생에 가장필요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하나님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대충 주시지 않으십니다.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야고보서 1:5)
우리의 부족을 고백하면 우리의 부족함을 풍성히 채우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하시는 신실한 아버지이십니다.
성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는 죄인알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속에서도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떠나버린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가 죄를 고하고 돌아왔을 때 그를 용서해 줄 뿐 아니라 그를 위해서 잔치를 베풀어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탕자처럼 방황하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 하나님은 꾸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돌아온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그 하나님은 변개하시는 분이 아니라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그 뜻이 변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십니다. 사무엘선지자 역시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사무엘상 15:29)
그렇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하고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분이우리의 아버지이심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아버지시요, 주시는 아버지시요, 용서하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수요기도회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증인이 될 것이다 (0) | 2007.11.10 |
---|---|
생명을 얻게 하려고 (0) | 2007.11.03 |
의심없는 믿음으로 만 (0) | 2007.10.24 |
습관이 나를 바꾼다 (0) | 2007.10.06 |
믿음이 뭔가요? (0) | 2007.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