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6:2-9(구약 89면)
당시의 상황
이스라엘 백성들의 압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복음의 선포가 오히려 압제자의 마음을 더욱 악하게 강퍅하게 함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실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보기에는 이스라엘이 주도권도 없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보잘것없는 약소민족이듯,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도 유약한 신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왕의 강압정책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하시는 계획을 깨닫지 못하고, 이를 전하는 모세에게 불평과 불만을 털어 놓고 있을 때, 모세는 절망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답답한 마음을 호소합니다. 절망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약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해방의 소명을 받고 바로를 찾아갔지만 성과는 커녕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은 모세는 코가 석자나 빠져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한 낙심한 모세를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조상들과 맺었던 언약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일찍이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언약을 맺으신 것은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언약의 내용뿐 아니라 언약 체결이라는 사건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정하셨으며 이스라엘의 전역사 속에 함께 하기로 하였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의 조상들에게는 여호와라 호칭만으로 그들을 만나주셨지만 이제는 그 이름이 간직하고 있는 속성을 통해서 그들을 만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스스로 현존하시는 창조주의 속성을 가지고 그들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 호칭의 첫 번째 속성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정착지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복된 언약입니다. 민족의 주권을 상실하고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땅에 대한 언약의 시행이 곧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 번 그 언약에 대해서 일깨워주십니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세기 17:8)
땅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땅을 간직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를 통해서 반드시 그 언약을 이루실 것을 다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뿐 아니라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를 소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믿음의 백성들, 즉 믿음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도 동일한 약속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원한 땅을 우리가 소유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영생의 소망이 오늘 우리에게 있으며 이것을 우리가 소유하기를 원하셔서 우리를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약속으로 주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잊어버린 기억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약속에 대해서 기억조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이렇게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9절 말씀에 그들이 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지 못하고, 모세가 전한 것이 그들에게 복음이 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이라는 긴 세월을 빼앗기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빼앗기다보니 더 이상 그들에게 그러한 것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의 땅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는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수많은 상처로, 그들의 마음이 부셔져 내려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심한 삶의 고초로 인해서, 애굽의 노동력으로 인해서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었다는 것조차도 기억하는 것이 희미해져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들은 오랜 세월의 세상풍파에 의해서 지칠 대로 지치고 깨어질 때로 깨어져버렸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약속에 땅을 향해 나가려는 노력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서 그것이 그들이 애굽의 무거운 짐을 너무 오래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마음이 그들의 강압으로 인해서 지금의 모습이 당연히 자신들의 참 모습이라고 믿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조금 상황은 다를지 모르지만 물질의 풍부함속에서 그러나 자신의 것이 아닌 것들을 좇아가느라고 사람들은 지쳐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느라고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사단이 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거친세상, 풍파를 지나느라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황폐해진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이 들리거나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영육간에 총체적인 고통으로 하나님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영적인 장애를 갖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모세의 말이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우리의 말에 귀 기울지 않습니다.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짐 때문에, 세상의 풍파로 인해서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해방자 하나님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는 조상과의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뜻 외에도 역사의 주도권을 가지신 분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도해 오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의 조상적부터 지금까지 그들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 여기에는 그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애굽의 무거운 짐을 벗기실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그 어께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시편 81:6)
너무 오랜 세월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살아오다보니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이지를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으로부터 이끌어 내실 분이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화)독수리 예화 닭인줄 알고 살아가는 독수리, 그러나 한 사람(새장수)의
노력으로 독수리로서 하늘을 향해서 힘차게 날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것은 비단 독수리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오셨습니다.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나는 전능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는 ‘울타리’라는 뜻과 ‘어머니의 젖가슴’이라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즉 어머니가 해산하는 진통의 고통과 젖가슴의 희생을 감수하는 ‘모성적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자녀들을 양육하고 세상의 풍파로부터 그들을 지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능하신 손과 강한 팔을 통해서 울타리처럼 우리를 막아주시고, 나를 위해서 희생하시는 사랑을 보여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가둬두었던 것들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그들을 그것들로부터 지키시고, 그들을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으로 우리 앞에 서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능력이 없으신 분이 아니라 잠시 우리를 위해서 참으시고 견디시는 것 뿐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있는 모든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약속의 하나님, 우리의 삶의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 나의 모습되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과 함께 힘차게 날아오르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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