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23-27
큰 놀(흔들림)이 일어난다
불가에서는 인생을 가리켜서 고해(苦海)라고 합니다. 이것은 '고통의 세계'라는 뜻으로, 괴로움이 끝이 없는 인간 세상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란 끝이 없는 고통이다라는 뜻입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일로 인해서 우리의 삶이 고통으로 휩싸일지 모르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러한 바다에서 일어났던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일을 그려놓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다른 동네로 이동하기 위해서 때론 배를 타셨습니다. 이렇게 배를 타고 갈릴리바다(갈릴리호수)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배가 바다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다에 큰놀이 일고 물결이 높아져서 배에 덮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막 4:37)
갈릴리 바다는 해면보다 206m나 낮은데다가 주위에는 그와 반대로 높은 산들로 에워싸여 있어서 이런 풍랑이 일어 수면이 거세게 요동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지불식간에 험난한 폭풍과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알 수 가 없습니다. 질병으로, 교통사고로, 사업이 망하는 것으로, 인생에 있어서 실패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갑작스럽게 우리의 삶으로 찾아와서는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찬송가 503장의 가사에도 보십시오.“큰 물결 일어나 나쉬지 못하나”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크고 작은 놀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작은 놀은 우리가 때로 쉽게 이겨낼 수 있다고 하지만 큰 놀이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집채만한 파도가 넘실대는 그러한 상황이라면, 절체절명의 상황들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우리의 삶은 어떨까요? 우리는 늘 고요한 바다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늘 고요한 바다만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나 믿음이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난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습니까? 고물에서 주무셨다. 배의 창고에서 태평하게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위험하고, 부서질 것 같고 무너져 살아져 버릴 것 같은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으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주무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의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이 함께하는 순간이기에 지금 어렵지만 그것을 이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두려워 떨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안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도 그들은 두려워떨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분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냥 그분을 선생으로, 예언자로만 알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 당장 닥쳐있는 문제만이 크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러한 제자들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편 42:11)
그렇습니다. 세상과 우리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은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의뢰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를 안전한 삶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삶에서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03장을 보십시오. “1절 고요한 바다로 저천국 향할 때 주내게 순풍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2절에서 이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풍을 주시고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을 주셔서 더 빨리 가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계심을 깨닫고 그분을 급하게 깨웁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구원하여 달라고 소리칩니다. 불신앙으로 몸부림치는 우리의 삶일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자 예수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제발 좀 살려달라고 우리가 죽게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두 손을 들고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맡길 때에 주님은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과 늘 함께 있으면서도 그분이 누군인지 모르고 그분을 따라다니는 그들을 향한 질책이십니다. 아니 어쩌면 세상의 위대한 스승이라고, 현인중에 한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르는 바로 그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하나님이시요. 세상을 창조하고 다르시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는 우리를 향한 질책입니다. 어려움이 올 때 사람들을 의지하고, 우리의 방법을 구해보지만 그러나 그것으로는 예수님을 찾는 우리의 삶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시 118:8-9)
제자들의 요청에 곧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물결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그가 어떤 분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느냐고 야단입니다. 그들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제 알지 않습니까? 그분은 온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사망과 심판의 자리인 십자가에 던져서 우리를 건지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분이 우리에게 순풍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있는 근심을 쉽게 그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어두운 영혼-죄로 인해서 눈먼자들-을 밝게하여-빛되신 예수께서 인도하심으로-저천국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은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의지할 곳 없는 우리에게 큰믿음을 주셔서 주님을 믿고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십시오. 그 하나님과 영원히 동행하시는 우리 권사님의 가정과 용산교회의 모든 가정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요한 바다로 함께 떠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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